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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유한 사람으로 인생을 완성하는 이삭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3. 10. 21:49

    주현절 후 마지막 주일[20110306]

     

    온유한 사람으로 인생을 완성하는 이삭
    (창 26:12-22)

     

    지난 주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오늘날 부름 받은 우리들에게도 약속의 자녀를 주신 동일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자녀 이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밝히시기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출 3:6). 창세기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약속의 씨로 주신 그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 그리고 요셉 이야기가 전개되며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삭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며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상대적으로 이삭에 대한 내용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삭의 생애가 짧았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 사람 중 가장 장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세로 생을 마감했고(창 25:7), 이삭은 180세(창 35:28), 야곱은 147세(47:28),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창 50:22), 스트레스를 안받고 그 생이 평탄해서 오래 살았을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이삭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들, 사랑하는 자,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사건을 기억해봅니다. 지난 주 말씀 드린 것처럼 창세기 22장에서의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이 살리실 것을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눈에 밟히는 아들을 기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로 바치겠다는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걸어가며 약속의 씨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자의 삶인데, 불현 듯 자신이 이삭을 얻은 이후로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깨닫고 모리아 산에서 자신의 뜻과 의지를 죽이는 아들 도살을 행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급히 말리며 멈추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험이 주는 충격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동일할 리는 만무합니다. 동일한 하나님 경험이지만 이 일 후 어린 이삭은 마치 이라크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가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 이후 어머니 사라가 127세로 돌아가시고, 아브라함이 며느리 감을 택하는 사건이 이어집니다.

     

    이삭의 청년기에 대해 한 줄도 언급이 없고, 이삭은 40세에 아버지가 택해주신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삭 이야기가 아브라함과 야곱보다 적고 오히려 리브가의 역할이 막중하기에 또 실제 사라의 자리를 대신하는 여족장 같은 지위에 리브가가 오르기에 어떤 이는 “아브라함과 리브가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삭의 이야기를 묵상할수록 어린 이삭이 받았을 충격, 40세까지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택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기다린 점, 부전자전 아내를 누이로 속인 일화, 그리고 대적자들과 싸우지 않고 우물을 파고 또 파는 본문의 사건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얼마든지 이삭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모태신앙의 원조가 바로 이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완숙한의 이삭의 모습은 부모의 신앙이 형성한 결과입니다. 이삭의 이러한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삭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아버지의 가르침과 어머니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노종 엘리에셀에게 명한 며느리의 조건은 단 하나 고향 사람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창 24:4). 거기에 종이 자신이 덧붙인 조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베푸는 마음씨였습니다(창 24:14).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을 하나 더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움입니다(창 26:7).

     

    여기서 아브라함이 말한 고향 사람이라는 조건은 단순히 고향 출신을 선호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가나안까지 800km가 넘는 거리를 오겠다는 것은 태생 강하고, 인내심 있는 여자가 아니고는 보통 일이 아닌 까닭에 아브라함은 그 조건 하나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며느리를 만날 것이라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신부를 맞이하는 이삭의 모습을 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의 모습 속에 우리는 40세 청장년인 이삭의 신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기도하며 낙타 타고 오는 신부감을 기다렸고(창 24:63), 노년기 이삭은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는 모습을 성경은 그리고 있습니다(창 25:21).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십년을 참지 못하고 사라의 여종과 동침하였던 과거가 있었지만(창 16:3), 이삭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20년간 인내했고, 마침내 큰 복을 받게 됩니다(창 26:12).

     

    여러 가지 인생의 굴곡을 겪고 난 노년의 이삭은 이제 인생의 비법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싸울 힘이 없어서 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비멜렉은 “너희가 우리 보다 강하니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팠다면(창 26:15), 26장에서 이삭이 모두 일곱 번 우물을 팝니다. 첫 번째 판 우물에서 아비멜렉이 떠나라고 해서 떠나고, 두 번째 그랄 골짜기로 이주해서 우물을 다시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다투어서 떠나고,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반대하고 대적하는 세력이 있어 또 옮겼습니다. 세 번이나 옮기니 더 이상 시비 거는 사람들이 없어 그곳을 ‘르호봇’이라 이름 합니다(창 26:22). ‘르호봇’은 ‘넓은 곳’이라는 뜻이니 결국 세 번 피하고 더 좋은 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다투지 않은 것은 이삭의 군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이삭은 다만 전쟁 대신 평화를 택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아비멜렉은 자신의 시기가 헛됨을 알고 오히려 그의 군대장관과 더불어 찾아와 이삭에게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창 26:26).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친을 청하러 온 아비멜렉에게 과거의 소행을 조금도 꾸짖지 않고 오히려 반가이 저들을 맞고 잔치까지 베푸는 것입니다(창 26:30).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이런 정치인, 이런 기업가를 찾아 볼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 안에 이런 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삭의 순종을 하나님이 기뻐했고 하나님이 큰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대적자의 입에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심을 보았고”(창 26:28),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창 26:29).

     

    십대 때의 충격을 경험했던 이삭, 아버지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자신을 기만했던 이삭, 그 이삭이 인생 말년에는 ‘온유’라는 성숙함이 밴 모습으로 완전히 변해있음을 창세기 26장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분명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이삭, 그리고 강하고 관대한 아내 리브가의 조력까지 얻으며 온유하고 충실한 이 시대 신앙인의 모델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노년의 이삭은 감정으로 싸우지 않고 때를 잘 분별하는 인내력을 가졌습니다. 강함이 있었지만 그 힘을 잘 조절하는 신앙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근원에서 예배자로 충실하게 살며 안식을 누립니다.

     

    그에게 어떤 두려움도 보이질 않습니다.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그렇다고 아버지의 훈육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로부터 평화를 추구하는 성품을 익히고, 아내로부터는 긍정적인 성품까지 배워 온유한 사람으로 인생을 완성하는 이삭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제 이삭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높은 영성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오아시스가 있는 땅의 복을 더해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만약 죽고 사는 절박한 문제를 지금 직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생을 포기하지 말고 온유한 사람으로 거듭난 이삭을 한 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물 없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우물을 파내려간 이삭의 신앙의 깊이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년의 이삭은 조용했지만 뿌리 깊은 노송이 되어 있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으로 인생을 완성해 가는 이삭을 닮아갈 수 있게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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