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1. 19. 23:05

    주현절 후 둘째 주일(2014년 1월 19일)

    누가복음 18장 9-14절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교훈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본문은 형식상으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고 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어느 순간부터 자기 의를 드러내고 교만해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행위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원래의 출발과는 다르게 변질된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종교행태를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철저한 율법준수자들이 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들의 율법준수를 자랑하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교만한 종교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신앙의 영적 교만이 있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해도 교만해지면 안됩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9-10절).

     

    예수님은 9절에서 이 비유의 목적을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영적 교만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을 지적하면서 한 바리새인의 예를 들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의를 스스로 드러내는 행위는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경건의 행위 즉 성경 읽고, 기도하는 일 등에 있어 내가 남들 보다 많이 하고 적게 하고의 차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3:10).

     

    예수님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칫 경건의 행위 자체를 의의 기준으로 착각하게 되는 위험성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한 바리새인의 기도 모습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이렇듯 내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교만해지면 안됩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의 모습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나. 교만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는 큰 죄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1-12절).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영적 교만을 경고하시는데, 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자신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인데,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고 했으니 실제는 기도한 것이 아니라 독백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종교행위가 형식이 되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의 독백 내용을 보면 자기의 열심과 수고를 알리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만으로 인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창3:5).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하게 되면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게 됩니다. 이 바리새인은 자신이 기도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그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의 고생을 자랑하기 위해 성전과 하나님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렇듯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게 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쉽게 정죄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다.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13-14절).

     

    우리는 신앙생활의 깊이를 경험할수록 그리고 경건의 행위를 반복할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의 임재 의식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면 종교행위는 하나의 자기 의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보통은 은혜라 하면 무엇을 받는 것만 은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주신 것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도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한 부자의 비유는 하나님이 주신 밭의 소출을 은혜로 깨닫지 못한 경우였습니다. 은혜를 모르면 내 생각, 내 판단, 내 계획을 앞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를 얻게 하신 은혜를 깨닫지 못한 부자 이야기를 통해 그에게 준 생명조차 은혜였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키셨습니다(눅12:20).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클수록 주어진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마25:20).

     

    반면 본문의 세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 세리는 자신의 모습을 진실하게 깨닫고 자신의 큰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 앞에 감히 눈을 들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바리새인들 같이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인해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도하고자 성전을 찾았다는 것은 벼랑 끝에서 은혜를 구하는 심정 같은 그의 간절함이 배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리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에게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슴을 치다’는 표현은 죄를 통회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원래의 의미는 특별히 속죄의 자비를 간청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망각한 바리새인이 아닌 은혜를 간절히 구한 이 세리가 하나님의 의를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의 이야기를 통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들어갑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절).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영적 교만을 경고하셨지만 그렇다고 세리를 칭찬하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세리처럼 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바리새인의 종교적 열심에도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상관없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높아진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받아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십니다(약4:10).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더하십니다(벧전5:5).

     

    은혜의 수단 자체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 신앙생활을 하다 교만이 들어오면 본문의 바리새인처럼 다른 사람의 경건의 행위를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환경도, 여건도, 능력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이 겸손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습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