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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 위에 은혜
    성경적 구원의 길 2009. 1. 10. 01:11

     

    은혜 위에 은혜: 웨슬리안 전통에서의 구원의 길

     

    이관수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죄

     

    1. 성경적 창조의 교리

    (1) 창조주와 피조물: 하나님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the source)이십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the Creator)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the creation) 사이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모두 피조물입니다.

    (2) 원 창조: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goodness)을 전합니다. 지금도 창조된 피조물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의 증거(the evidence of God's existence and glory)를 보여줍니다.

    (3) 창조의 목적: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심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은 세상을 인간의 육체적인 보존과 즐거움을 위해(for our physical sustenance and pleasure) 창조하셨습니다.

    (4) 창조의 약속: 하나님의 창조의 마지막 목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beyond this present world)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1) 도덕적 형상: 하나님은 인간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as unique) 창조하셨습니다.

    (2) 자연적 형상: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성은 의존성(dependence)과 독립성(independence)을 같이 주셨습니다.

    (3) 정치적 형상: 하나님은 인간을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최고의 대리자로(as supreme agents) 임명하셨습니다.

     

    3. 죄: 죄의 해부

    (1) 교만: 하나님 외에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idolatry),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atheism) 모두 죄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교만(pride)을 주어 자기 의지(self-will)대로 살라고 유혹합니다. 피조물의 한계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피조물 안에서 행복을 찾게 만듭니다.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2) 불순종: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disobedience)하는 것이 죄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속입니다. 피조물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에게 이 세상에 속한 것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채우도록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자꾸 유혹합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타락입니다. 그 길의 종착역은 멸망입니다.

     

    4. 원죄

    (1) 원죄: 원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아담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 유전된 본성의 타락(corruption)을 말합니다.

    (2) 원죄의 결과: 아담의 원죄는 모든 인간의 본성에 죄 짓는 경향성을 물려주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였고, 인간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 얻는 믿음

     

    1. 선행 은혜(Prevenient Grace): 우리가 먼저 교만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방황하는 모습, 상처 입은 심령을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에게 속하지 말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행 은혜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선행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세주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렘 31:3; 요 6:44)입니다. 우리가 알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입니다(요일 4:10, 4:19).

     

    2. 회개(Repentance): 선행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이지만 이 은혜에 응답하는 책임은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거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지 못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음이 아니요, 인간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독생자 예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6). 이 은혜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십니다.

     

    (1) 죄를 슬퍼함(Sorrow over sin):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고,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failure)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Inability to save oneself): 회개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helplessness)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되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얻는 구원(Salvation by Faith)

    (1) 구원의 원천과 조건: 선행 은혜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 은혜의 보편성,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지만(Universal Redemption),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원천(the source)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구원의 조건(the condition)은 인간의 믿음입니다.

     

    (2) 구원얻는 믿음(Saving Faith): 구원얻는 믿음이란 이교도의 믿음, 사탄의 믿음(눅 4:34), 이 땅에 계실 동안 그리스도를 따랐던 제자들의 믿음도 아닙니다.

     

    구원얻는 믿음이란 그리스도가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얻는 믿음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믿고, 깨닫는 지혜(wisdom)입니다. 둘째로, 그 분만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시고, 다시 사시어 우리의 의(righteousness)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어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회복(sanctification)시키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영생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구속(redemption)임을 믿는 것입니다.

     

    4. 칭의의 은혜(Justifying Grace)와 칭의(Justification)

    선행 은혜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즉시 하나님은 당신을 껴안으십니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주시는 용서와 회복의 축복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의 관계의 변화입니다.

     

    (1) 법적인 의미에서의 사면(In a sense of Juridical Pardon):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의지함으로 지나간 모든 죄로부터 용서받으며(forgiveness),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acceptance).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죄의 형벌(guilt)에서 사면(remission)을 받습니다.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2) 치료적인 의미에서의 회복(In a sense of Therapeutic Recovery): 칭의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특히 도덕적인 형상에서의 회복이 시작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치료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전염병으로부터 해방되어 건강이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성화와 성결의 은혜

     

    1. 거듭남(신생): 칭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시는 우리를 위한 관계적 변화(relative change)라고 말한다면,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활동을 통해 주시는 우리 안에서의 실제적 변화(real change)를 말합니다. 칭의와 거듭남은 논리상의 구분일 뿐 시간상으로는 동시에 일어납니다. 거듭남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당신은 새 사람의 옷을 입었고, 성령께서 당신을 새롭게 만드시기 시작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엡 4:24).

     

    2. 거듭남의 증거

    (1) 믿음: 거듭난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믿음, 살아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a. 믿음의 열매: 참 믿음은 모든 종류의 외적인 죄(악한 말과 행동)를 정복하고, 모든 종류의 내적인 죄(거룩하지 못한 모든 욕망과 기질)를 정화시킵니다. 따라서 참 믿음을 가진 자는 이러한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참 믿음은 하나님과의 화평함을 얻습니다(롬 5:1).

     

    (2) 소망: 거듭남 사람에겐 성령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곧 성령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확신케 하고,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증거 하는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3) 사랑: 거듭남 사람에겐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 마음속에 부으시고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으로 마음의 기쁨이 넘치게 하십니다.(롬 5:5)

    a. 사랑의 열매: 하나님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웃 사랑을 낳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또한 하나님 사랑은 그 분의 뜻과 모든 계명에 순종하며 모든 대화의 방법과 모든 기질까지도 하나님 뜻에 순종함을 낳습니다.

     

    3. 성결의 은혜(성령 세례)의 필요성

    (1) 죄를 이기고, 악행을 피하기 위해.

    거듭남은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넘치며,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라고 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죄의 형벌(사망)로부터 사면 받은 것이지, 죄의 본성(부패성)까지 완전히 치료받은 것은 아닙니다. 거듭났다고 하여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결의 은혜(성령 세례, 성령 충만)를 받지 않고서는 죄를 이기고, 악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유혹과 시험은 항상 있습니다. 유혹과 시험이 없는 곳은 천국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의 유혹과 시험을 피할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유혹과 시험을 이길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거듭남은 성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바울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라고 말했습니다. 칭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해도 우리 안에는 죄의 본성(죄악의 쓴 뿌리)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그 분이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주신 것이며, 죄의 형벌에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 8:1),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롬 8:39)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죄의 형벌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인 부패성(depravity)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세상 유혹에 빠지게 만들고, 자꾸만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와 싸워 이기고, 악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선행을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러한 일은 불가능합니다.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요,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복음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구원은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이 세상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루어 나기기 위해서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만 합니다. 거듭난 사람이라 해도 성결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은혜 위에 은혜”(요 1:16)가 날마다 필요합니다.

     

    4. 성결의 은혜를 받는 방법

    (1) 성결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결의 은혜 또는 성령 세례(성령 충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지라고 말씀하십니다(벧전 1:16).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함과 온전, 성결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결의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4:3). 따라서 우리가 성결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첫째 되는 방법은 성결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결의 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성결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 순간 바울처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나(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나(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이 보전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살전 5:23)

     

    (2)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도 여전히 죄의 뿌리는 남아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의 세력을 이길 능력이 없고, 죄의 전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에게는 비록 우리 스스로 죄를 정복할 수는 없을지라도 죄를 정복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정복할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는 말은 우리가 더 이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거나 죄의 종이 아니라,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의의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죄를 정복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죄를 정복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를 정복할 근거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히 12:2).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보였습니다. 여기가 좋다고 이곳에 집을 짓자고 베드로는 말하지만 이후 모세와 엘리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마 17).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으로, 엘리야를 통해서는 예언으로 사역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완성되고 하나님은 이제 예수를 통한 구원의 사역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질병과 고통,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뿐만 아니라(요일 1:7), 죄의 세력과 싸워 이길 힘을 주십니다(빌 4:13). 그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임을 믿고 나아가십시오(히 6:2). 그 분이 나를 깨끗케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온전케 하심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3) 사랑의 언어: 거룩한 기질로 변화되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이 깨끗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엡 4:24).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온갖 더러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언어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말, 부끄러운 말, 비방과 거짓말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말은 감사의 말, 선한 말, 은혜를 주는 말(엡 4:29, 5:4; 골 3:8-9) 곧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언어는 어떻게 나올 수 있습니까? 거룩한 기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거룩한 기질은 순간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습관적인 과정으로 형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러운 말을 아예 입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한두번 하다보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형성은 곧 우리의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의 변화는 기도의 습관, 언어의 습관을 통해 일어납니다. 생각과 말의 변화 없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행동의 변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기질(holy tempers)에서 거룩한 삶(holy actions)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내면을 거룩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분임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 나를 거룩한 기질로 변화시켜주소서.”

     

    (4) 정결: 도덕적, 성적 온전함(moral, sexual sanity)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엡 5:3)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라고 말씀하시며 “곧 음란을 버리라”(살전 4:3)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속한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음란, 음행, 색욕, 불의, 시기, 사기, 투기 등(롬 1:29; 갈 5:19-21)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불의와 온갖 악에서 떠나야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계속해서 바울은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덕적, 성적 온전함은 정결한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5) 돈: 나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돌려드리십시오.

    우리는 돈의 문제와 성결을 다른 문제로 보려합니다. 심지어 ‘깨끗한 부자’라는 말을 만들며 합리화시키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돈은 창고에 쌓이면 쌓일수록 나누어주기 보다 더 쌓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열심히 섬기며, 부자도 되기를 바라지만, 예수님을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란 나와 내 식구의 먹고 입고 덮을 것을 위해 사용되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부입니다.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 가난한 자들에게 그냥 주라는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그냥 주고 “더욱 믿음의 가정들”(갈 6:10)을 위해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잠시 맡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내 뜻대로 소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 때 주인의 즐거움에도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마 25:21, 23).

     

    (6) 전도: 복음을 전할 때 성결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전도가 의무임을 아는 것과 실질적으로 전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교회의 욕심으로 전도하는 것과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성령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보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할 때 성결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부터가 전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장거리 여행의 기회에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전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처음 만나는 사람이 전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항상 전도자의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전도할 때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웨슬리도 전도하며 죽을 고비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죽음을 각오하고 전도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스데반은 공회에서 변론을 하며 살 길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려고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설교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에게 영화의 은혜(foretaste of glory)까지 보여주신 것입니다(행 7:55)

     

    (7) 자기 부정: 나를 버리고 내 안에 십자가를 모실 때 성결의 은혜를 받습니다.

    영광의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9). 이는 그들이 보아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그들은 예수가 부활한 후에야 예수님이 말한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들에게는 진정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아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마 16:24)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자아가 남아있는 한 인간은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멀고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정은 금욕적인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비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부정을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버리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를 모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용서의 사랑을 말합니다. 어떻게 나에게 상처주고, 나에게 손해를 끼친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생각하고 내 죄를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은 내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십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그 분이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만 나를 버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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