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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서하는 삶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 3. 02:47

    송년주일[20071230]


    용서하는 삶(창 45:1-8)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열네 장이나 되는 많은 양이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선조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한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요셉은 그들 보다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믿음의 경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은 요셉의 신앙을 통해 용서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요셉의 시련

    요셉은 오랜 세월 동안 참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로 형들보다 더 많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는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창 37:13-14)

    요셉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형들이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모의하여 결국, 은 이십에 애굽 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비록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요셉은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여 주인에게 인정받고 총무의 권한까지 맡겨집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주인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뒤집어 쓴 채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시련들을 겪은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며, 눈물이 나고, 형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겠습니까? 인간이라면 이러한 감정을 느끼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이 분노를 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불평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2. 용서의 사람, 요셉

    요셉이 어려움과 시련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는 과정은 정말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대한 모습은 요셉이 그 과정에서 용서의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번 용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에서가 야곱을 용서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용서합니다. 이와 더불어 요셉이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은 성숙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애굽에 가서 각고 끝에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창 41:41). 요셉은 바로로부터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받고, 아스낫이라는 아내까지 얻게됩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요셉이 해몽한 대로, 애굽 온 땅에는 칠 년 동안 큰 풍년이 있게 되었고, 이후 큰 흉년이 왔는데, 애굽뿐 아니라 온 땅에 기근이 있게 된 두 번째 되던 해의 어느 날 애굽의 총리 요셉 앞에 자신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애굽에 팔고 아버지에게 가서 맹수에게 잡혀 죽었다고 거짓말한 그 형들이 지금 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형들은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당시 최강국의 총리가 자신들이 팔아먹은 동생 요셉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됩니다.

    그 순간 형들이 얼마나 두려워 떨었겠습니까? 이 때 요셉의 나이가 근 39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온 것이 10대 후반이니까 2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이 흘러 요셉은 강대국 애굽의 총리 신분이 되었고, 형들은 식량이 없어 가나안에서부터 양식을 사러온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셉과 형들이 서로 마주 보고 서있는 순간입니다. 형들은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 요셉이 뭐라고 말합니까? “두려워 마십시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입에서 이렇게 위대한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용서의 사람입니다. 인격적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신앙의 성숙한 경지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돌아온 복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난 날의 잘못을 탓하거나 원망 하나 소리 내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고백했습니다.


    3. 성숙한 신앙인, 요셉

    요셉은 하나님에게 크게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이는 그가 용서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그 이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큰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셉은 왕 다음 가는 권세를 받았지만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권세를 백성의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만 사용하였습니다.

    요셉은 각고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과거를 잊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벌써 과거를 잊었습니다. 마음에서 털어버렸습니다. 누구든 다 용서했습니다. 형들 뿐 아니고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보디발의 아내도 용서했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두 배의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내게 주어졌던 아픔과 원한들을 하나님이 대신 갚으셨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나의 과거의 아픔과 어두움과 원수에 대한 보복들을 말끔히 씻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 “므낫세”를 낳고 “나는 이제 과거를 잊었다”라고 이름 짓고, 둘째 아들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지어, “내가 이제 다 잊었으니 두 배의 결실을 얻었다”하고 만족해했습니다. 요셉은 지난날의 아픔과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 지워버리고 용서했는데, 형들은 지금 과거 때문에 두려워했고 요셉이 복수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위대한 지도자, 요셉

    우리 주변에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배신과 누명과 속임과 불이익을 준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인격이 파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성이 메말라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내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원수 갚겠다고 이를 갈고 한을 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려는 목적 자체가 나에게 모욕주고 억울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임으로 복수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복수극이 나오고 인간성 파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어떻게 그런 용서를 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마음에서 원한과 복수심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용서할 만큼의 마음의 크기가 없습니다. 속마음이 작아서 조그만 것도 용서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작은 문제 가지고 싸우고 원망하고 보복하고 복수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또 하나는 “용서받은 기쁨”이 있어야 누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누굴 용서하고 용납하고 살아가겠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이 누굴 용서하고 용납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용서받은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이 위대한 용서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용서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그 용서를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은 요셉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실 계획을 이미 세우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크게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적 상식으로는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를 사람들을 통해서 애굽으로 가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형들로 하여금 애굽에 팔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잘 있던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감옥에서 바로의 왕궁에서 일하던 관원을 만나 사귀게 하셨고, 그 동시에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을 때에 그 꿈을 해몽하는데 먼저 사귀어 놓은 관원을 통해서 인도받아 바로 왕 앞으로 나아갔고, 그 꿈을 해몽한 요셉은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걸어간 그 배후에 자상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요셉은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보았고 이해하고 간파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그 분노와 복수심과 원망과 증오심을 더 이상 품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형들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복수심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오히려 형들을 만났을 때에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는 신앙으로 요셉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영성의 길, 용서하는 삶

    용서는 영성의 최고봉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용서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상처받으며 어렵게 성공한 사람은 그 동안 당한 만큼의 권력을 아랫사람들에게 휘두르기 쉽습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고(마 5:44), 형제에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22).

    인도의 성자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쓰레기 통에서 한 여인을 끌어냈는데, 그 여인은 다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을 데리고 수녀원으로 왔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해서 꼭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단 한번도 ‘배가 고파요’라든지 ‘저는 죽게 되었습니다’라든지 ‘고통스러워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냥 계속해서 ‘내 아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내 아들을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제가 도와주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용서받지 못했고, 용서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한 여인의 가슴 아픈 모습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래서 복수의 칼날만 갈고 있지는 않는지?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죽을 죄 값을 용서받았으니 남도 용서해야만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007년의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아직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용서합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영혼은 서서히 죽어갑니다. 만 달란트의 채무를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은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온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용서해야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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