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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을 끝까지 따르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9. 3. 10. 17:00

    사순절 1(2019. 3. 10)

    마태복음 818-22

    주님을 끝까지 따르라.

     

    . 제자는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르라...”}(22).

    본문은 신앙의 언저리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끝까지 함께 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어떤 서기관과 제자 중 한 사람은 신앙의 경계선에 머뭇거리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무리 가운데서 나와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도는 무리 중에 섞여서 듣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도 무리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무리 가운데서 나아온 사람들에게 하셨습니다(5:1). 사람들이 모이니까 무언가 있나보다 하고 기웃거리는 자세로 신앙생활 해서는 안됩니다.

    모이기만 하는 그만이다라는 생각, 고백하면 다 된거다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합니다. 바울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한 것도 박해 시대에 나온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10:10). 믿는 사람은 제자가 되어야 하고 제자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 동상이몽이 문제다.

    {한 서기관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선생님, 당신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19).

    한 서기관이 주님께 나아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더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적 관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거처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동상이몽하면서 따르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언서에서 말한 고난의 종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자신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여우와 새 비유를 들며 그보다 못한 춥고 배고픈 길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에는 수천 명이 모였습니다(14).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는 열두 제자들도 다 도망갔습니다(26). 예수님 가신 길에서 자기 유익, 물질의 풍요를 찾던 사람들은 다 실망하고 돌아갔습니다. 주님을 찾는데 주님의 목적이 아니라 내 목적을 갖고 따르면 안됩니다. 동상이몽이 큰 문제입니다.

     

    . 주님과 뜻을 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르라...”}(22).

    그러면 어떤 자세로 제자의 길을 가야할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하셨는데 여기서 따르다’(ακολουθεω)함께 같은 길을 가다는 뜻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방식과도 같이 가야 합니다. 여우와 새 비유는 그러한 한 면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나를 따르라’(ακολουθει μοι)고 명하셨을 때 이는 배신하지 말고 끝까지 따라올 것을 요청하신 말씀입니다(현재 명령). 제자는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셨고(5:20),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도 하셨습니다(7:13).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하였습니다(1:17). 이는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의인으로 사는 길은 주님이 가지셨던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의 가르침, 주님의 가치관, 주님의 믿음으로 끝까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 주님의 길에 생명이 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죽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장례 치르면 된다.”}(22).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주님을 따르고 싶지만 먼저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주님 곁에 있던 제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주님의 반응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주님을 따르는 일이 다른 의무들 보다 더 중요하다 라든지, 여기서 죽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라든지 등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을 오해한 해석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관계까지 단호히 끊을 정도로 그렇게 엄격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주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따뜻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아버지 장사하러 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자 장사지내는 일을 하나님 나라 일과 대조하여 해학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도의 심각한 결단 앞에서 나를 따르는 일 곧 하나님 나라 운동은 사람 살리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14:6). 예수님이 가신 길은 진리의 길이기 때문에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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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번역

    18절  이때 예수님께서 자기를 둘러 서 있는 무리를 보시고는 건너편으로 떠나자고 명하셨다.

    19절  그런데 한 서기관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선생님당신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20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둥지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21절  또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주님, 저는 먼저 떠나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허락해 주십시오.”

    22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르라(ακολουθει 현재 명령). 죽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장례 치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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