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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7. 12. 3. 11:00

    대강절 1(2017123)

    창세기 3224-29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야곱은 홀로 남아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야곱을 붙잡고 밤새 씨름하였다}(24).

    본문은 야곱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사와 씨름하던 일화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식구들을 먼저 강 저편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야하는 어려운 일을 앞두고 두렵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날 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다고 했습니다. 혼자 남아 심히 외롭고 불안한 야곱에게 하나님(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본문의 씨름하다’(아바크)는 하나님이 찾아와 야곱을 붙드셨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야곱은 형이 어떻게 나올지 그것이 불안했습니다. 자신이 초래한 결과였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물까지도 준비하며 인간적인 방법은 다 동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네가 살 길은 나를 붙잡는 것이다라고 야곱에게 최후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술수를 써서라도 탈출구를 찾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도망가고 싶고, 사람 의지하고 싶을지라도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였습니다(42:5). 우리 성도들은 인간적인 술수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 야곱으로 살면 안된다.

    {그 사람이 야곱의 저항이 완강함을 보고 허벅지 관절을 치니 야곱은 씨름하다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었다}(25).

    본문에서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고 하였는데, 읽으면서 이해를 잘 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는 야곱의 저항이 완강했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씨름은 육체적 싸움이 아니라 야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붙드심입니다. “너 내 말을 들으면서 살래, 네 성격대로 살래,” “순종하며 살래, 네 고집 그대로 살래라고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과의 기싸움에서 기어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주저앉았으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만 야곱은 비록 부러진 다음이지만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묻고 야곱이 답한 것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였습니다(27).

    하나님은 야곱의 정체성을 묻고 있습니다. “너 술수부리는 자 아니냐,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속이고, 잔재주 부리고, 네 고집으로 살지 않았느냐, 이제 더 이상 야곱으로 살지 마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바로 이런 요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야곱식의 버려야 할 기질들이 있습니다. 야곱은 늦었지만 그나마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버리고 돌이켜야 할 악한 기질들을 직시하고 깨버려야만 합니다.

     

    . 이스라엘로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말했다. “다시는 너의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스라엘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맞서고 또 사람들도 겨루었기 때문이다.”}(28).

    야곱이 매달리자 비로소 하나님이 알려주셨습니다. “너는 더 이상 속이는 자가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로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천명입니다. 야곱이라 불렸던 한 사람은 이스라엘로 살아야 제대로 사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야곱과 같은 인생의 틀에 갇혀있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남을 속여서라도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야 하는 욕심과 기만이 있었습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생기는 경쟁심과 비교의식이 있었습니다. 야곱으로 살지 말고 이스라엘로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곱(속이는 자)이 이스라엘(하나님이 다스리는 자)이 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실하며, 실패나 남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그 길의 목표를 의인, 완전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게으름이, 어떤 사람은 용기가 없어, 어떤 사람은 진실하지 못해 그것으로 발목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의 격정을 확실히 붙잡고 성숙으로 나아가면 야곱 인생이 아니라 이스라엘 인생이 됩니다.

     

    . 이스라엘로 살면 복이 임한다.

    {야곱이 묻기를 부디 당신의 이름을 말하소서.” 그 사람은 어찌 나를 알려하느냐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29).

    야곱은 자기 힘으로 잘 살아보려 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형과 원수가 되었고 결국 집을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는 평안했을까요? 온갖 재간을 써서 재산을 증식시켰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야곱은 쫓겨나듯 떠났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습니다.

    야곱으로 살면 죽고, 이스라엘로 살면 삽니다. 내가 떠나면 하나님도 떠나고, 내가 돌아오면 하나님도 돌아오십니다. 이것이 신앙 공식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다스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내가 하나님 편에 서니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 싸우십니다.

    야곱이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이 형 에서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내 힘으로 사는 인생 야곱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 이스라엘로 사니까 하나님이 화해케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내가 할 일에 충실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소망을 두는 인생입니다. 땅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진정한 사람 이스라엘로 살면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본문 번역

    24절 야곱은 홀로(바드) 남아있었는데 어떤 사람(하나님 또는 천사)이 야곱을 붙잡고 밤새 씨름하였다(아바크).

    25절 그 사람이 야곱의 저항이 완강함을 보고 허벅지 관절을 치니 야곱은 씨름하다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었다.

    26절 그 사람이 이제 날이 밝았으니 제발 나를 떠나게 놓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곱은 내게 축복을 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못 보냅니다라고 하였다(떼를 썼다).

    27절 이에 그 사람이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야곱(속이다)입니다라고 했다.

    28절 그 사람이 말했다. “다시는 너의 이름을 야곱(속이다)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스라엘(하나님이 다스린다)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맞서고 또 사람들도 겨루었기 때문이다.”

    29절 야곱이 묻기를 부디 당신의 이름을 말하소서.” 그 사람은 어찌 나를 알려하느냐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바라크 피엘 미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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