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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이 주신 에덴 동산을 잘 돌봅시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3. 24. 00:49

    사순절 둘째 주일[20110320]


    하나님이 주신 에덴 동산을 잘 돌봅시다.
    (창 2:8-17)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대부분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그렇게 듣고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갖고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만 놓고 본다면 하나님은 마치 젖먹이 아기를 품은 어머니와 같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후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어떻게 살도록 하셨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앞선 말씀을 봐도 하나님은 분명 인간을 피조물 중에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창 1:27)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른 피조세계를 다스리라”(창 1:28)는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2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이 각종 짐승들도 흙으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흙으로 만들었고 짐승도 흙으로 만들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그 코에 생기를 직접 불어넣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호흡기를 통해 사람을 직접 접촉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사랑하시고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특별한 존재인 사람을 본문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모유를 주듯 부족함 없이 돌보시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처음 에덴 동산의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을 위해 직접 살 곳을 일구시고 마련해주셨습니다(창 2:8). 하나님은 에덴에 정원 같은 동산을 만드시고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들”이 나게 하셨습니다(창 2:9).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최고급 식탁을 진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에덴 동산이라는 선물을 주시고 동산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먹으라는 엄청난 자유를 주셨습니다(창 2:16).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것입니다. 단지 에덴을 잘 돌보고 지키는 일입니다(창 2:15). 그리고 한 가지를 명하셨는데,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창 2:17).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처음 인류를 위해 제공하신 ‘에덴 동산’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곳에서 한 가지 먹지 말라고 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의미가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유일하게 금지한 명령을 아담이 불순종하고 에덴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에덴 동산을 주셨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일하게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에덴을 인간에게 허락하셨는데 굳이 한 가지만 금지 명령을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이 질문 안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하는 이 땅의 피조물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건 사람 역시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율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지 명령은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의 경계선과도 같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보면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창 39:6). 또 9절에서 주인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하자 요셉은 말하길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라고 뿌리치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요셉에게 금한 한 가지는 주인과 종의 경계선입니다. 요셉은 그 경계선을 지켰지만 처음 인류 아담은 그 경계선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이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영혼은 죽었고 악에 대한 경험적 지식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20세기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프란시스 쉐퍼는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실과를 먹고 반역한 결과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들이 반역을 실제로 했을 때에 그 악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소유했으며 또한 그로 인해 생긴 잔인성과 슬픔의 모든 결과를 당하게 되었다.”


    선악과의 경험,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와의 경계를 침범한 불순종과 교만한 행위이고 그 후로 인간은 하나님만의 기준인 선악을 인간 스스로의 잣대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믿고 자신의 기준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이렇게 하나님의 고유 권한인 선악의 기준을 인간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으로 취해 결국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고, 자신의 뜻과 생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죽으리라” 한 대로 죽은 인생이 되고 만 모습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처음 사람이 범죄한 결과 환경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단지 먹고 마시는 것의 풍요로움과 강이 흐르고 땅이 비옥한 환경을 잃어버린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에덴’이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젖을 물고 있는 아기에게 기쁨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젖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기에겐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자체가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사람을 두시고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면서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란 에덴 안에 있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을 먹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단지 단 하나 선악과를 제외한 자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지 말라는 단 하나의 명령, 그것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주셨던 선물인 에덴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겐 성경이 말하는 그 에덴이 더 이상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기쁨의 동산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요, 자식이요,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심오한 진리 하나를 가르쳐 줍니다. 처음 인류 아담의 반역으로 우리에겐 에덴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우리도 태어나면서 에덴이 주어졌지만 단 하나 하지 말라고 하는 그 명령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에덴을 잃어버리고 사는 창세기 2장의 반복을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함으로 그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 말로 평안이고, 기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은 자유 같아 보이지만 그 속은 늘 불안하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그 속은 일시적인 쾌락에서 오는 불만족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돌보라고 준 에덴 동산, 곧 기쁨을 주는 내 자녀, 내 배우자, 내 부모, 내 가정, 내가 속한 공동체를 잘 돌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우리의 눈을 내 자녀가 아닌 세상 탐닉에, 내 배우자가 아닌 세상 사랑에 쏟아 붓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무슨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고상한 교리를 외우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에덴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가정과 공동체가 나에게 기쁨의 원천임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는 두 사람에게 “와서 보라”라고 하셨습니다(요 1:39). 즉 예수님은 직접 와서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경험한 한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입니다(요 1:41).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에덴을 창설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면 기쁨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으며 언제나 고통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원천을 잘 돌보라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지킬 계명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했던 말을 기억해 봅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동산을 누리며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에덴 동산을 잘 돌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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