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감사는 행복한 삶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7. 7. 11:40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맥추감사주일

    누가복음 17장 11-19절

     

    감사는 행복한 삶의 시작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나병환자들은 마을 밖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행여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지나가다가 나병환자를 먼저 발견하고는 돌을 던져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쳐서 피해야만 했습니다.

     

    가히 나병환자들의 삶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병은 피부전염병으로 신체에 보이는 부분에서 혐오감을 주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저주 받은 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나병환자 열 명은 예수님을 만나 병에서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가. 감사라고 다 같은 감사가 아닙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14-15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11절). 나병환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마을로 들어가시기 전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기회였습니다. 그들이 멀리 서서 예수님께 소리 높여 자비를 구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절).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

     

    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가라’는 말씀 한 마디에 낫게 될 줄 믿고 떠난 그들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가다가 어떤 일을 당할 지도 모르는데 나을 줄 믿고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던 중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중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본문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열 명이 고침 받았는데 그중 한 사람만이 감사를 표하러 돌아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이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물론 나머지 유대인 아홉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최소한 마음속으로는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했다고 다 같은 감사는 아니라는 것을 본문은 일깨워 줍니다.

     

    나. 제대로 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6절).

     

    길을 가던 중 고침을 받고 돌아온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께 경배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13절에서 열 사람 모두 ‘예수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선생님’으로 부르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고 감사는 표현하기 나름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감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격 탓으로 그 이유를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표현 문제는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병들어 침상에 누워 본 사람은 그때서야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깨닫게 됩니다. 내 힘으로 숨 쉬고, 내 힘으로 침 삼키는 것조차도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는 법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더 큰 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홉 명의 유대인 나병환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리심 산의 성소로 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유대인 나병환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병이 나았음을 보이고 정결함을 인정받기까지는 최소한 열흘은 걸립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절차가 중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에게 감사하기 위해 나은 즉시 돌아왔습니다. 시간을 지체했다면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할 시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이방인은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보이는 일 보다도 먼저 달려온 것입니다. 나중에 감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늦습니다. 지금 감사할 분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감사입니다.

     

    다. 진정한 감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7-18절).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고침 받았는데 아홉 사람은 어디있냐”고 물으셨습니다. 도대체 이 질문은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사마리아 사람 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누가는 이 이야기 설교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교훈으로 주려는 의도가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은 무슨 종교를 만들거나 어떤 세력을 일으키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게 하셨으며, 인간답게 사는 법을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 때 실제 천국 생활로 이어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사를 표현한 이 사마리아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온 자’라고 하셨습니다. 믿음도 구원받는 믿음이 있듯이 감사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감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넓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아름다운 말을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맡겨진 사명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렇듯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라. 감사는 행복한 삶의 시작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예수님은 제대로 감사를 드린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이신칭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감사를 한 사마리아인에게 행복한 삶의 출발을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한 이 사람에게 완전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생의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돌아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감사를 하면 그 음식이 우리를 다시 건강하게 해줍니다. 평상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심장박동수도 가장 안정적이 됩니다.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며 사는 일이 온전한 삶의 시작입니다. 내가 만난 당신 때문에 감사하며 살면 행복한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