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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룩한 삶이 생명의 길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6. 18. 01:01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주일[20080615]

     

    거룩한 삶이 생명의 길입니다.(출 20:14)

     

    1. 교회의 위기, 가정의 위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법인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을 생각해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열 가지 계명은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것은 덜 중요한 중요도의 순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 가지의 계명 모두가 하나님이 언약 백성으로 하여금 생명의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데 있어 동일하게 중요한 삶의 규칙들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의 기술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라도 없앨 수 없으며, 소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강단은 유독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를 그동안 중요하게 다루어 오지 않았고,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가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가정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십계명 제7계명을 지키지 못함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간음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침묵하지도, 간과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녀들이 부모에게 “성”에 대해 질문할 때, 가르쳐 주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성”이란 것이 부모님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해답을 세상에서 찾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 스스로, 세상에서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궁금증에 대한 안전한 해답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보다 부모가 더 올바른 가르침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성”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고, 교회가 그 문제를 침묵해 온 사이, 우리 사회는 “성”을 왜곡하고 상품화 해 왔으며, 교회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교인들의 성적 타락의 문제를 덮어버리기에 급급해 왔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성”의 문제이고, 또 하나 다음 기회에 다룰 “돈”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과 “돈”의 잘못된 사용의 문제가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병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제7계명과 제10계명에서 “정욕”과 “탐심”의 심각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정욕”의 문제를 다루는 십계명 제7계명의 의미를 신중히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2. 제7계명을 푸는 열쇠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 공동체는 분열되고, 파괴되기 때문에 십계명은 언약 백성된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생명법과도 같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있지만 이것은 개인에게 주는 계명에 국한됩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공동체에게 주는 계명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간음죄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임을 알았기 때문에 간음죄에 대한 형벌을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간음을 저지른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거나, 화형 시키거나, 공동체에서 완전히 추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간음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오늘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할지의 숙제가 남겨집니다. 저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푸는 핵심 열쇠를 세 가지의 단어로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또는 결혼, 언약), 거룩, 경계”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을 잘 기억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부정형의 명령을 긍정형으로 바꾸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 거룩, 경계”라는 세 단어와 연결해서 살펴보면, “간음하지 말라”라는 명령은 곧 “가정을 지키라, 거룩한 삶을 살라, 경계를 지켜라”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3. 가정을 지켜라.

    “간음하지 말라”라는 하나님 명령의 일차적인 의미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가정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였고, 첩을 두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첩이란 아내와 동등한 위치가 아닌 하나의 소유의 개념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합법적 자녀는 아내와의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합법적 자녀가 누구냐 하는 것은 혈통을 이어가는 데에 중요한 문제였는데, 간음의 문제는 이러한 일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간음을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으로 간주하고, 사형으로 다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과의 구별되는 특징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함이란 육체적, 정신적, 영적 깨끗함을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고서, 정신적, 영적으로 깨끗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하였습니다. 곧 음란과 거룩은 서로 반대되는 말입니다. 이어 5절, 6절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였습니다. 색욕을 따르는 자들은 이방인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6절의 말씀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풀어쓴 것입니다.

     

    성경은 음란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골 3:6)고 했고, 음행과 같은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 5:21)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 딸이면 육체적으로도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4. 거룩한 삶을 살라.

    일차적으로 “가정을 지켜라”는 이 뜻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방 신을 섬기고,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호세아 2장 13절에,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구약의 예언자들은 일찍이 엘리야로부터 시작하여 한결 같이 바알 종교의 위험을 경고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그 유혹에 넘어가서 음란의 길로 빠진 이스라엘을 무섭게 질책하였습니다.

     

    “간음하다”로 쓰인 히브리어 “na’aph”의 의미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결혼관계를 깨다”(break wedlock)라는 뜻이 있고, 또 하나는 “apostatize” 곧 “신앙을 버리다, 변절하다, 공동체를 떠나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보면, 육체적인 간음뿐만 아니라 언약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변절과 우상 숭배 또한 간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바울의 기도를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결국 거룩한 삶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spirit, soul and body)의 거룩함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기를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거룩한 삶을 산 사람만이 거룩한 죽음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거룩한 삶을 살라”라는 말씀으로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5. 경계를 지켜라.

    “성”이란 말의 영어 “sexuality”는 라틴어 “scare”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절단하다, 단절하다, 경계를 긋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결혼 관계에 대한 최고의 비유는 아마도 “활활 타오르는 난로”라고 생각됩니다. 난로는 그 안의 장작불로 뜨거워야 합니다. 그러나 장작불이 난로 밖으로 나오면 불이 나고 맙니다.

     

    성적 경계를 긋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은 음란한 대화, 성희롱, 성폭력, 성폭력 게임 중독, 포르노 중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최근 청바지 입은 여성의 허벅지를 만져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준 사건이 성추행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사건이 항소심 공판에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러면 원심에서의 판사는 무죄였다고 판결했다는 것인데, 분명 그 판사의 판결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성의 허벅지에 손을 의도적으로 댄 것은 성추행입니다.

     

    사람들은 어디를 만져도 되고, 어디를 만지면 안 되는 지도 모릅니다. 한 집안에 사는 남매라고 할지라도 몸의 경계를 긋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음행의 죄를 자기 몸에 범죄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8절을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음행의 죄는 사람들의 눈만 피하면,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경고합니다. “음행은 자기 몸에 범죄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고전 6:19), 하나님을 위해 몸도 사용되어야 함(고전 6:13)을 말씀합니다.

     

    또한 우리는 몸의 경계를 긋는 법뿐 아니라 마음(중심)의 경계를 긋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아갈 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 늘 가까이 만나는 학교나 직장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죄라는 전염성은 너무나 큽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이 전파되는 것에 비해 나쁜 말과 나쁜 습관, 나쁜 행동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것을 봅니다.

     

    음란한 대화를 일삼고, 음행에 중독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그들을 정죄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사람들의 악한 기질과 그것으로 비롯된 문제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되지 않냐고 지적을 하게되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너는 얼마나 의롭다고 그러느냐"고 하는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역반응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기에 대해 안셀름 그륀은 “경계를 그어라”는 말로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만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과 경계를 긋고,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들이 나에게 불화의 기운을 전염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경계를 긋고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며 그냥 내버려 둔다.”

     

    6. 거룩한 삶이 생명의 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오늘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것에 해당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모두 영적 간음입니다. 부부관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지키는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육적, 영적 자녀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7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육적인 성결도 지키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고 간음한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것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간음죄를 짓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행위의 간음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어디 간음만 해당하겠습니까? 도둑질 한 자도 다시는 도둑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엡 4:28)이 하나님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길이 없음(갈 3:11)을 알고, 겸손히 다시는 죄 짓지 않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삶, 그것은 우리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삶입니다. 거룩한 삶으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이 건강한 삶입니다. 거룩한 삶, 생명의 길로 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삶은 음란을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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