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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의 신비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7. 16. 00:13

    성령강림절 후 아홉 번째 주일[20080713]

     

       고난의 신비(시 119:65-72)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생길 수 있고, 사업의 부도 또는 실직 등으로 인해서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게 되어 온 가족이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 8:7) 하였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 상황은 성공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고, 좌절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를 성공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위기는 변화의 기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하나의 운이라 생각하고 그 원인을 사람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과 불신앙인과의 차이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느냐”를 살필 수 있는 지혜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됩니다. 우리가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어린이 상태로 성장이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이 계속해서 날마다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고전 13장 11절에서 바울이 고백한 것과 같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한 것이 이런 맥락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였습니다. 거룩함이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신앙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기도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뿌리가 우리 마음에 튼튼하게 뿌리박혀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엡 3:16-17).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면 고난이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갓난아이가 문밖에 있다면 부모는 때려서라도 집안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궁금해 보이지만 갓난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세상이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 갓난아이가 말씀을 먹고 자라지 못하고 자꾸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 매를 들어서라도 고난을 주십니다(잠 13:24).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왜 나만 주는 고난이냐고 불평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한 단계 믿음이 성숙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변화의 기회, 성장의 계기로 삼는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됩니다. 고난을 피하지 마시고, 변화와 성장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느냐를 살필 수 있는 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네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의 이러한 상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마 13:18-23). 길가의 뿌려진 씨는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는 순간은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지는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도 마찬가지로 말씀은 들었으나 곧 돌아서면 그의 마음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들어와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을 비유하시면서는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한다는 의미가 곧 영적으로 성숙해져 신앙이 자라나고 풍성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은혜를 얻으며, 우리의 신앙이 날마다 자랄 수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6-7절을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니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지혜도 하나님이 주시며, 신앙을 자라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깨닫고 싶어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고, 내가 성숙해지고 싶다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숙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성장은 성경 지식이 쌓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은사 체험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거룩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데, 바로 “나를 먹으라”(요 6:57)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해,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를 먹으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고난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요나를 통해 그러한 예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시고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욘 1:2)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가고”(욘 1:3)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않고 불순종하면서 고난이 나에게만 찾아온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죽을 길로 가는 데 하나님께서 막으시지, 안 막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려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란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수단일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분명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 이유는 고난을 통해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정근모 명지대 총장은 20대에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까지 지냈던 분입니다. 그런 그가 겸손한 신앙인으로 알려졌지만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그런 일이 없었으면 그에게 겸손함을 찾기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쓰시기 위해 그런 고난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될 것 같지만 실지로는 많은 인생들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말씀처럼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도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우리는 욥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문제를 상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고난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는 다 욥과 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귀중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수많은 인생의 충고를 했지만 욥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했습니다. 욥은 세상의 눈으로 보이는 악인의 득세를 부러워하지 않고, 하나님 경외의 신앙(잠 1:7)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무어라 말해도 입술로도 죄를 짓지 않는 믿음(잠 4:23)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욥이 고난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중에 갑절로 얻은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욥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귀한 은사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성숙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 가지 고난이 오면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약 1:2).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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