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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의 빛이신 예수님을 소망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2. 23. 15:47

     

    대강절 넷째 주일[20121223]

     

    구원의 빛이신 예수님을 소망하라(사 9:1~7)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이 빛을 드러내시기 이전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여기서 ‘땅’의 의미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 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상태는 ‘혼돈’입니다. 혼돈은 삶의 질서가 없는 모습입니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없고 놀기만 하고 살 수 없습니다. 일과 휴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해 집니다. 이러한 질서가 무너지면 내면 세계에 전쟁이 일어나고 나아가 중독 혹은 게으름의 상태가 되어 무질서해 지고 맙니다. 영적인 무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없는 상태는 ‘공허’입니다.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만족이 없고 계속해서 목마른 상태가 됩니다. 곳간 안에 양식에 가득 차도 탐심이 멈추지 않습니다.(눅 12:18) 물에 술 탄듯, 술에 물 탄듯 떠밀려 사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참된 행복이 없어 정서적으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공허입니다.

     

    혼돈과 공허도 넓게는 흑암의 상태에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영적 상태를 성경에서는 ‘흑암’이라 표현합니다. 흑암은 불순종과 죄로 하나님을 떠난 고통의 상태를 상징합니다.(엡 2:1) 이런 흑암의 상태가 계속되면 그 끝은 절망이고 죽음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두움과 죽음'이 드리운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되었다는 말은 '절망'에서 '소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절에서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9장을 보면 이스라엘 왕 베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 15:28) 그 결과 하나님은 앗수르를 들어 심판하시고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이 점령 당하게 하셨습니다.(왕하 15:29)

     

    스불론과 납달리는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 북쪽의 이방 땅과 가까운 지역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땅을 대표적으로 언급하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이방 국가를 사용하여 심판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속히 돌아오기만 바랄 뿐이십니다. 때로는 그 사랑이 주변 국가를 들어서라도 멸시를 당하게 하시는 것은 어서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의 멸망 원인을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난 악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소도 그 임자를 아는데 나의 백성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사 1:3) ‘그들은 부패하여 나를 버리고 나를 만홀히 여겼다’고 탄식하십니다.(사 1:4)

     

    하나님을 떠난 국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비참해집니다. 선은 행할수록 기쁨이 오지만 악은 행할수록 비참해지는 법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죄와 사망의 법’이란 죄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입니다.(롬 8:2)

     

    이러한 죄의 상태, 사망의 기운으로 덮인 영적 상태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큰 빛’을 보는 것입니다. 큰 빛이 바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이키게 합니다. 본문에서는 큰 빛이 비춰짐으로 ‘이 나라가 다시 창성하게’ 되고, ‘추수하는 즐거움’이 있게 하고, ‘빼앗겼던 것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예언합니다.(사 9:3)

     

    또한 ‘큰 빛’은 무거운 멍에와 고통에서 해방하여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하였습니다.(사 9:4) 어둠은 내가 씨름한다고 물리칠 수 있는 세력이 아닙니다. 그러나 큰 빛이 비치기만 하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갑니다.

     

    기드온이 삼백 용사로 메뚜기 같이 수많은 미디안을 물리친 전쟁은 기드온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사건이 아니라 삼백 명이라는 소수를 가지고도 수만 명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시는 구원의 사건입니다.(삿 7:7)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에게 있습니다.(시 146:5)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것입니다.(삼상 17:45) 이것이 ‘큰 빛이 비치면 어둠이 물러간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소망을 물질적 풍요에 둘 수 있고, 어떤 이는 지위에, 어떤 이는 자녀 교육에 소망을 두며 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소망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세속적인 소망은 진정한 평강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위로와 행복,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구원의 소망은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만에게 있습니다.

     

    본문 6절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는 분), 모사라(우리의 위로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였습니다.

     

    큰 빛이 어둠을 물리치듯 이 땅의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참된 소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였습니다.(요 1:4)

     

    예수님은 어둠의 일들과 그 배후의 어둠의 영을 몰아내시는 큰 빛이십니다.(시 139:12) 큰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는 곳에 생명이 있고, 위로와 치유가 있고, 영생이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 속에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참 소망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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