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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맹인인가?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0. 25. 00:29

    성령강림절 후 스물한째 주일[20121021]

     

    나도 맹인인가?(요 9:35~41)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에고 에이미’가 나옵니다. ‘에고 에이미’는 ‘나는 누구다’라는 헬라어로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통해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요 6:35)

     

    또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을 통해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요 11:25) 오늘 본문은 한 맹인이 실로암에 가서 씻고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의 결론 부분으로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십니다.(요 9:5)

     

    요한복음에서 선포하는 일곱 가지 ‘에고 에이미’에는 육안으로 보여진 표적이 가리키는 영의 세계를 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구약이 가리키는 실체도 그리스도입니다.(골 2:17) 성경은 믿음으로 이르는 구원의 길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딤후 3:15)

     

    맹인인 어떤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로 인한 까닭인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9:3)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가운데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모든 인생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선포한 욥기 말씀에서도 욥은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라는 고백을 하였던 것을 보았습니다.(욥 23:10) 욥은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결국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말은 모든 인생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목표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 혼동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은 똑같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롬 11:36) 다른 표현으로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이고(막 1:15, 빌 2:12, 벧전 1:9), 천국에 이르는 것이고(마 13:43),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고(벧후 1:4),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고전 10:31)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일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마 6:33)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이 있고 목표들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교회도 다니고, 전도도 해야 하고, 부흥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고 목적을 위한 목표와 수단 자체가 목적처럼 되어 버릴 때 바울의 경고처럼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갈 3:3)

     

    예수님이 태생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이 사건 또한 하나의 표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유념하며 본문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도 한 가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맹인의 눈도 뜨게 해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고침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구원을 향한 작은 목표일뿐입니다. 아직 영혼의 구원이 남아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에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자 열 사람 모두 깨끗하게 치유해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열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경배드립니다. 예수님은 이 한 사람만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눅 17:9)

     

    본문의 맹인도 눈을 떴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육의 눈을 뜨게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영혼이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말하는 초점은 단순히 맹인이 눈을 떴다는 사실 자체 있지 않음은 분명해 집니다.

     

    맹인이 눈을 뜬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 주목해 봅니다. 먼저 그를 알던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리고 그중 몇 사람이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로 갑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이 사람을 두 번씩이나 죄인 다루듯 다그쳤고 그 부모에게도 물어보았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을 유대교 공동체에서 출교시켜 버리고 맙니다.(요 9:34) 이 사람은 진리를 고수하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은 대가로 또 다시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어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본문은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의 믿음과 바리새인들의 믿음 없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눈을 뜬 사람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누구냐는 바리새인들의 추궁에 그가 하나님께로 온 자라고 확신합니다.(요 9:33)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이 사람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눈을 뜨게 한 사람도 의심하고, 눈을 뜬 사람은 아예 출교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위기에 처한 이 사람을 그냥 놔두시지 않으시고 만나주십니다.

     

    예수님과 만난 이 사람은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경배 드립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 9:38) 그런데 그 자리에는 바리새인 몇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맹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함께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영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되고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요 9:39)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그럼 우리가 맹인이란 말인가?’라고 말합니다.(요 9:40)

     

    오늘 본문의 핵심은 태생 맹인이었다가 눈을 뜨게 된 사람을 보고도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이웃들과 바리새인들을 보고 그들이야 말로 진짜 맹인이라고 하시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맹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지 생각해 봅니다.

     

    첫째 예수님이 말씀하신 맹인은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요 9:41)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죄인 운운 합니다.(요 9:16) 또한 맹인이었던 사람을 불러서는 눈을 뜨게 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하라고 몰아갑니다.(요 9:24)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하시며(눅 6:39),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눅 6:41)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죄성을 보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은 결코 자신이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맹인이고 거지였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막 10:47)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 구원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맹인라고 경고하시는 사람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지를 모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결코 구원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만을 절대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지 않으면 우리의 죄를 씻김 받을 길 없는 죄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진리에 눈을 뜨고 겸손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맹인이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제자'를 자부하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율법과 사람의 전통으로 눈이 가려졌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마 5:17)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롬 10:4)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롬 10:3)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 곧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5장)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맹인이란 율법과 사람의 전통에 갇혀 진리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같은 의미입니다.(요 1:5)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요 12:45)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이 영혼의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9)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빛이신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하여 나아가며(히 12:2) 그리하여 마지막 날 주님만을 사모하는 자에게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되길 원합니다.(딤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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