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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생명의 문으로 통과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10. 19. 10:10

    창조절 일곱째 주일(2014년 10월 19일)

    마태복음 7장 13-14절

     

    날마다 생명의 문으로 통과하라.

     

     

    가. 많은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3절).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길이 쉽게 믿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찾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문’과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은 많은 무리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마5:1). 예수님은 “너희처럼 나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 다수가 구원의 길이 좁은 길임을 깨닫지 못하고 넓은 길만 찾으려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는 말씀이 분명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는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누군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상황과 같습니다(마7:23). 넓은 길로 가면서 좁은 길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에게 하루는 한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지 물어보았습니다. 이 청년의 질문 속에는 나름 율법의 기준을 충분히 따른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마19:21). 이 청년은 부도 얻고 영생도 같이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넓은 문입니다. 넓은 문은 사람들이 넓혀 놓은 문을 의미합니다. 곧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나. 좁은 문은 하나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13-14절).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율법 이면의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무슨 의미인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무슨 의미인지 본뜻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형식적으로 믿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라고 하셨습니다(마5:20).

     

    이와 같이 오늘날 넓은 문이란 사람들의 생각과 전통, 가치관으로 넓혀 놓은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본질은 흐려놓고 비본질은 부풀려 놓은 가짜 기독교입니다. 진리의 길은 하나인데 많은 것처럼 넓혀 놓았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하나인데, 믿음 따로 행함 따로의 신학을 만들고,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여 신앙의 폭을 넓혀버렸습니다.

     

    본문에서 “좁은 문은 그 길이 협착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협착하다’라는 동사는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로 그렇게 좁혀놓으셨을 때는 그 의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기준과 뜻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을 거룩, 의, 선, 사랑 등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좁은 문’을 예수님은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삶 속에서 좁은 문을 가르치시고 친히 모범을 보이심으로 직접 ‘좁은 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 말씀의 성육신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요1:14).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의 문으로(요10:9),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로 증거하였습니다(요14:6).

     

    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14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한다고 강조하셨습니까? 그것은 그 문만이 구원의 문이요,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생생한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절대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택하지 않고 사망을 택한 인류 역사의 시작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너희 앞에 생명과 사망의 두 가지 길이 놓여있으니 생명을 선택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신30:19). 다윗은 멸망으로 끝나는 악인을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을 길로 행하라고 간구하였습니다(시1:6).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두신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음을 외쳤습니다(렘21:8).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명의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아버지께로 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을 계속해서 통과해야 하고, 이 길로 줄곧 걸어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바른 선택과 결단으로 참된 생명을 얻길 소원하십니다.

     

    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날마다 선택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원 받는 자의 수가 많고 적음을 말씀하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재림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듯, 구원 받는 자의 수도 아버지만 아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생명의 길로 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그 길이 ‘협착하다’고 했습니다. 이 동사는 분사형으로 쓰였습니다. 한 번 통과했다고 끝나는 문이 아니고, 한 번 들어섰다고 누군가 이끌어주는 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고난의 관문이 얼마나 자주 나타날지 모릅니다. 평탄하지 않는 길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좁은 문을 통과하고 또 통과 해야만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날마다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하는 숙제가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멸망의 길을 경고하시고,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천국 가는 이 길을 끝까지 가야합니다. 구원은 바른 길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더없는 선물입니다. 귀한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마13:46).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님의 믿음으로 가면 천국을 소유하는 큰 복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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