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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8. 6. 21:56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20110724]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창 6:9-22)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사람에게 주신 자유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직관하여 행하는 자유 의지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부패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인 절대 선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육적 본성으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2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문자적으로 셋의 자손들을 말하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거듭되는 하나님의 씨들의 타락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6장 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사탄의 유혹으로 하와가 나무를 보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창 3:6) 느꼈다는 부분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거의 사람을 납치하는 수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다는 표현입니다.


    계속해서 3절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들인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2절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육적 욕망으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셋의 자손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 씨들이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결합하고 동물처럼 약육강식의 삶, 힘으로 사람을 탈취하고, 권력 자랑, 명예 자랑으로 낙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육체로만 사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영은 떠났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왜곡된 자유 의지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런 사실은 역사 이전에 있었던 하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육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 땅의 것들만 추구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영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성경의 경고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 인격적으로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육신이 된 인간들이 하는 생각은 늘 악만 도모하고, 행위도 부패하였습니다. 부패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호흡이 끊어져 시체 썩는 것처럼 냄새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실”(창 6:6) 정도로 썩어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에 하나님의 계획과 순리대로 살지 않는 단 하나의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라고 창세기 6장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결단을 내리시기에 이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이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시겠다고 결단하십니다. 결심의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육신으로만 살면서 생각과 행위가 악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부패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인데, 마태복음은 홍수 심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무엇 때문에 홍수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그 땅의 사람들이 모두 살인죄나 간음죄, 도둑질같은 무슨 큰 범죄를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즉 육신에 일만 관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행여나 땅에 속한 일만 하면서 자기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는 행위를 하나님은 정말 가증히 여기십니다. 야고보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꼴입니다. 이런 것이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결심하면서 이것을 노아에게 알려주시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창 6:14)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모든 사람을 쓸어버리기로 하시는 가운데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창 6:8)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 속에서도 노아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홍수 심판이 끝나고 방주에서 삼백일이 넘게 있다가 나온 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과 땅에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세상이 거짓말하니 나도 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법을 안 지키니 나도 안 지킨다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 기준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살 것인가로 구원 받은 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알고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모든 사람을 쓸어버리기로 하시면서도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창 6:8)고 하신 것은 노아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그 ‘방주’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방주에는 두 가지의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의 상징이고, 또 하나는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지 너와 너의 가족을 위해 방주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날로부터 방주가 완성된 날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노아 혼자 이 일을 할 수 없었고, 가족들의 도움과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들은 조롱을 함께 참고 견디는 믿음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너를 위한 방주’는 노아만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구원의 소식에 함께 동참하였기에 노아의 식구들은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이 근 칠팔십년 방주를 지었던 기간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경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부패하고 포악한 인간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육의 일에만 관심을 가졌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히 11:2)고 하였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영적 세계가 있다는 믿음, 보지 않고 믿는 이런 믿음의 소유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요 2:29)


    눈에 보이는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면 땅의 것들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게 됩니다. 창세기 6장의 노아 방주 사건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너를 위해 방주를 만들라.” 신앙생활은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 때문에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듯이(마 6:20), 신앙생활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인간의 부패란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도 살 수 있다는 타락한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이 육신의 생각으로 하는 모든 계획이 실상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요일 2:16) 육신의 생각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고, 종국은 사망일뿐입니다.(롬 8:6) 이와 반대되는 믿음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인생입니다. 노아는 바로 온 세상이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렀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롬 11:36),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 가운데서 인도하십니다.


    노아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들라고 명하신 방주, 모세를 살리기 위해 만든 갈대상자,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 이런 것들이 모두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 안에 인격으로 계신 구세주 예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방주를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와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도구가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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