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2. 19. 03:50

    주현절 후 마지막 주일/변모주일[20120219]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막 9:2-8)


    오늘은 주현절 후 마지막 주일로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거룩하신 모습으로 변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변모주일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고, 생명책에 기록될 의인의 길을(시 69:28) 깨닫는 은혜가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 이야기를 구약성경을 통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마가복음 9장에 기록된 본문을 부분적 또는 표면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절기 이야기를 잠시 기억하고자 합니다.

    레위기 23장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지킬 안식일 규례와 일곱 가지 절기에 대한 규례들이 나옵니다. 레위기 23장 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레 23:1-2)

    계속해서 레위기 23장 3절에 “여호와의 안식일,” 4절에서 “여호와의 절기”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안식일,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고, 여호와의 안식일,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안식일과 절기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이 제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시간조차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때에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을 두시고 낮과 밤을 나뉘게 하셨는데,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1:14) 여기서 ‘계절’은 ‘여호와의 절기’라고 할 때에 쓰인 단어와 같은 ‘모아딤’입니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시간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시간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절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때를 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특별히 만나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절기를 정하신 이유입니다.

    레위기 23장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절기가 일곱 가지 나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마지막으로 초막절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절기들에 행할 규례들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절기들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성경(구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요 5:39), “모세가 자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는 신비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요 5:46) 즉 모세 오경이 예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기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특별히 정하신 때인 하나님의 절기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를 통해 알려주셨고,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의 의미를 성취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재림과 심판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가르치시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마 26:2) 하셨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절기도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무교절에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시고, 초실절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나머지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도 유대력으로 티슈리(Tishri, 양력 9~10월)에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절기 가운데 맨 마지막인 초막절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레위기 23장 33절 이하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초막절 규례를 보면, 초막절은 일곱째 달 보름부터 시작하여 8일간 지켜야 합니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 성회로 모이고, 8일간 초막에 거합니다.

    8일 동안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매일 제사를 드리는데, 8일 동안 제사에 쓰이는 수송아지는 합하여 70마리나 됩니다. 초막절의 시기는 추수를 다 마친 때입니다. 신명기 16장 13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 16:13-15)

    초막절은 추수를 다 마치고 소출을 다 거두어들인 후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레위기 23장에서 하나님은 초막절을 주신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 23:43)

    하나님이 초막절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은 광야 40년 동안 초막(텐트, 장막) 짓고 살았지만 ‘내가 너희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초막 생활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광야 생활이 다 끝나고서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것을 또한 즐거워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의 초막 생활은 이 땅에서의 우리 인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변모되셨는데, 눈부시게 하얗게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황홀한 현상 가운데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게 됩니다.

    이 때 베드로의 반응을 주목해 봅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셨으면 한다”고 예수님께 말합니다.(막 9:5)

    베드로가 경험한 이 사건은 분명 천상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 같기도 하고, 생각 없이 말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심코 한 말이 진담일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초막 세 개를 만들어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은 초막절이 가까운 때에 있어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곳에 초막을 짓고 싶다”고 쉽게 말한 것입니다.

    이때 구름이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덮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 이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통해 마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초막절은 초막에 8일간 거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광야의 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초막과 같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본향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추수 후에 노동도 쉬면서 다가올 천국을 이 땅에 미리 맛보는 기쁨의 절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초막에 거하며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든지 부르실 때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초막과 같이 일시적입니다. 여기서 천년만년 영원히 살 지 못합니다. 초막에 사는 사람은 금방 사라질 세상 것과(요일 2:17) 썩어질 사욕에(벧전 1:14) 목숨 걸지 않고, 하늘의 영원한 집을 사모합니다.(고후 2:1)

    베드로는 우리 육신의 장막이 잠깐이고 벗을 때가 멀리 않았음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16절에서 말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증언하면서 우리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우리가 비록 육신의 장막에 살지만 이 땅에서 형언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이때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6:7) 이 말씀이 바로 육신의 장막을 벗기 전까지 동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고(벧전 1:19), 육체의 정욕(벧후 2:11)과 세상의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갈 5:24) 나그네 인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생명책에 기록되는 인생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