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돌을 옮기소서.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4. 15. 11:45


    부활절[20090412]

     

    돌을 옮기소서(마 28:1-10)

     

    1. 예수님의 죽으심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만 삼일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영도 아래 애굽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구하시고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애굽인들에게 내린 마지막 재앙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이 날을 기억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날도 유월절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가 제삼시 곧 오전 9시로 나옵니다. 그리고 제구시, 오후 3시 즈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외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까지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못 박히고 피를 흘리시며 약 6시간 가량을 고통가운데 서서히 육체적 죽음을 겪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야말로 온 몸을 드린 유월절 제사의 산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끝까지 목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8-49절을 보면,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제자들은 도망가 버리고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름 없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따르던 사람들 이십여 명이 그 현장에서 아무 말 없이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을뿐입니다. 예수님은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탈수로 입을 열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 기록에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가슴을 치고 돌아간 무리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마음으로라도 동참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마 그 무리 가운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용기 내어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시체를 거두어 세마포로 싸서 자신을 위해 예비한 무덤에 넣어두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서둘러야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날 해 지기 전까지 일을 마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 안에 옮겨졌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2절 이하를 보면, 요셉은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고 갔는데 그 후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무덤을 막은 돌을 인봉하고, 경비병까지 두어 지키게 명령 하였습니다. 누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만일의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몇몇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큰 지진이 나면서,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은 것을 봅니다. 이 때 지키던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고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눅 24:3) 도대체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로 간 것입니까?

    2. 예수님의 부활

    누가복음 24장 4절을 보니,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져온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근심에 잠겼있습니다. 이 때 천사 둘이 나타나자 여인들은 무서워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알립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인생은 육체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죽고 난후 썩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을 지닌 영적인 존재로 계속 살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니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죽은 다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였습니다.

    선한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도 선한 일입니다. 악한 일이란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독하고, 예수님과 상관없이 사는 일입니다. 자신만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이 악한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살고 있는 우리도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3. 인생의 무덤 돌을 치워라.

    예수님은 다시 사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을 포함한 인격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보니,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자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봅니다.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일”을 묵상해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돌이 무덤에서 옮겨지지 않더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지진으로, 그리고 천사의 힘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신 일이 그리스도인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주는 메시지라면, 이 날 무덤을 막고 있었던 큰 돌이 옮겨진 일에도 분명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졌기에 여인들은 무언가 무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보게 되었고, 이 때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그대로 있어도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무덤으로 달려 온 여인들에게 알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인간의 눈을 통해 빈 무덤을 확인시키고, 무덤을 막고 있던 무거운 돌을 옮긴 일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로 증거합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기억합니다. 노아의 식구들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동물들이 다 방주로 들어간 후 하나님이 친히 그 방주의 문을 닫으십니다. 방주의 문을 인간이 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닫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무덤 안에 갇혀계실 수 없습니다. 생생명이 보존된 장소를 돌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도 이미 부활의 몸으로 사는 것이라 성경은 말합니다. 이 말은 무덤의 돌이 더 이상 믿는 사람을 가두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을 막고 있는 무거운 돌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부활로, 진정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일을 방해하는 무언가의 짓눌려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란 나의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고 왜곡되게 만든 그 무엇, 언제부턴가 진정한 나로 살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아를 변형시킨 돌,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을 일그러뜨린 채 나를 억누르고 있는 인생의 돌, 그 돌이 나에게는 없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도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을 막고 있는 돌을 치워버리는 일, 온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사는 일입니다.

    일상의 표면적인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다른 사람들의 힘과 영향력, 그들의 기대와 요구와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헛된 삶에서 참된 삶으로 일어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신 그 내면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께서 고유하게 창조하신 왜곡되지 않고 흠이 나지 않은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돌을 치워버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오늘 우리 안에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인생의 돌을 옮겨주시길 기도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