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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를 만나게 하신 이유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 28. 00:09

     

    주현절 후 셋째 주일[20130127]

     

    ‘마라’를 만나게 하신 이유(출 15:22~26)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삼일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릅니다. 그런데 ‘마라’의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 후 사흘 동안의 물 없는 여행길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너무 쉽게 잊게 했습니다.

     

    ‘수르’는 ‘벽’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흘 전만 해도 소고 치며 춤추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광야 길에서 맞닥뜨리게 된 장벽 앞에 백성들은 낙심하고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모든 것을 모세의 탓으로 돌리고 맙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우리에게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구원을 죽음 이후 보장되는 장소의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고 이 땅에 있는 동안 구원을 이루어야 천국 가는 것입니다. 천국 자체는 이미 구원의 완성을 말합니다. 구원은 내세의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면초가의 상태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광야 사흘 길에서 마실 물도 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의 핵심은 인생의 환경 속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고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근본 마음입니다.(딤전 2: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과정 속에서 주시는 시련은 분명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왜 광야에서 ‘마라’를 만나게 하셨을까요?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먼저, 구원이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본문은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아시고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데 열 번째 재앙은 애굽 땅의 모든 첫 태생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름으로 애굽 땅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이 ‘여호와의 유월절’인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출 12:2)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 함으로 구원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출애굽으로 이제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하는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으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영적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6:14) 그 후에 노아는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평하지 않고,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구원을 위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함으로써 모든 고난이 끝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이 펼쳐질 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는 전 과정이듯이 우리의 구원도 회개에서 천국까지 이르는 영적 여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까지 이르도록 구원의 과정 속에서 훈련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삼일 광야 길 후에 ‘마라’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 시험입니다.

     

    야곱의 식구가 애굽으로 이주한 뒤 4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 속에 흐르는 정신은 더 이상 '야웨 신앙'이 아닌 '애굽의 문화'였고, 그들 안에는 버려야 할 많은 옛 성품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마라’의 쓴 물 앞에 서있도록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환경을 만날 때 마다 자신 안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시련과 어려운 고비를 만나게 하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본래 모습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자 ‘원망’이라는 쓴 뿌리가 드러났습니다. 출애굽 직후 춤추며 노래 불렀던 모습은 사라지고 ‘낙심’과 ‘원망’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구원으로 인도함 받는 길이 절대적인 ‘순종’에 달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라’를 통해 이스라엘의 들보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는 ‘너희는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경고합니다.(히 12:15)

     

    ‘쓴 뿌리’는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괴롭게 만듭니다. ‘쓴 뿌리’는 천국 가는 길에 많은 방해를 줍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인도함을 받는 과정입니다. 구원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 환경을 통해 자신의 '쓴 뿌리‘를 보여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설교하셨습니다.(마 5:8) 구원은 땅에 속한 굳은 마음, 옛 마음을 제거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 새 마음으로 정화되는 과정입니다.(겔 36:26)

     

    하나님은 인생이라는 광야 생활 동안 위기의 상황, 극한의 상황을 통해 내면의 ‘쓴 뿌리’를 보게 하십니다. 나의 ‘쓴 뿌리’를 제거하는 일이 곧 훈련입니다. 우리 안에 ‘쓴 뿌리’가 제거되어 갈 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본문은 어떤 일을 만나도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원망을 들으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한 나무를 가리키시며 물에 던지라고 지시하십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모세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나무'가 치료제가 아니라 '순종'이 치료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순종의 극치라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싶어서 지신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지신 것입니다.(빌 2:8)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그 결과 온 인류는 '죄의 치료제'를 얻게 되었습니다. 광야 인생길에서 우리는 내면의 쓴 뿌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성을 다 가지고 나와 치료받고,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출애굽 일 세대가 원망과 불순종이라는 옛 사람의 마음을 끝내 치료하지 못한 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민 14:37) 이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좁은 길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마 7:14)

     

    저는 우리 모두가 천국 가도록 마음을 고쳐 가시는 ‘치료의 하나님’에게 순종하면서 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길 원합니다.(고후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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