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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 깨끗한 사람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1. 8. 11:58

    Crater Lake, Oregon


    성령강림절 후 스물다섯번째 주일[20081102]

     

    마음이 깨끗한 사람(마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인간이 과연 하나님을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이고,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볼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길,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질문은 던질지언정 그 답은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원어적으로 깨끗함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은 카사로스인데, “오점이 없는, 순수한, 정결한, 죄가 없는”이란 의미입니다.

     

    즉 흠이 없고, 순결하고, 죄가 없는 그런 깨끗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팔복의 말씀은 굉장히 차원 높은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감을 잘 잡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상징적인 이미지로 생각해보는 것이 좀 더 쉽게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깊은 산 속에 바람 한 점 없을 때의 호수와 같은 이미지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을 때의 거울과 같이 잔잔한 호수는 그 위로 모든 것이 비췹니다. 하늘 위로 구름이 떠갈 때도 비취고, 푸르른 하늘이 그대로 물색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한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게 될 때,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머리가 커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시기가 생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어찌 있단말인가 라는 일반적인 질문을 가져볼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기가 우리 눈에 보입니까? 바람이 우리 눈에 보입니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과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찬란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멋진 장관이라도 그것은 가시광선 내에서 보이는 현상일뿐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안에 있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을 벗어난 적외선과 자외선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 여름을 지나면서 우리 몸이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면 그 자외선이 우리의 피부를 태웁니다. 또한 박테리아는 우리의 육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10경개의 박테리아가 붙어삽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보다 박테리아 수가 10배 이상 더 많은 것입니다. 입속에도 있고, 뱃속에도 있고, 손바닥에도 수두룩합니다.

     

    지금 밖을 내다보면 북극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극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북극성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 태양계 안에는 별이 하나있는데, 태양입니다. 그리고 지구와 같은 행성이 9개 있습니다. 북극성은 초거성이라 불리웁니다. 그리고 그 크기는 태양의 반지름의 100배 이상입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태양 속에 다 집어 넣으면 태양 속에서 모조리 없어지고 맙니다. 태양의 부피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극성은 이 태양의 반지름의 100배의 크기이니까 머리 속으로 상상만해도 어마 어마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북극성이 대낮에는 우리 눈에 안보입니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외선은 특수 고글을 사용하면 볼 수 있고, 미세한 박테리아를 보려면 현미경이라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800광년이나 지구에서 떨어진 북극성을 보기 위해서는 밤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해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머리만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고민하며, 과학 속에서, 철학 속에서 그 해답이 나올 줄로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들은 인간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분석 대상으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연구하고, 실험한다고 포착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창조주의 뜻에 맞게 살 때 보이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갖추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보겠다고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여주실 때 인간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양동이로 바닷물을 한 바가지 퍼올릴 수는 있지만 바닷물을 다 담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분을 내 그릇 안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분에게 내가 담겨야할 뿐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보여져야 하는데, 그것은 내가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러한 정화의 과정 속에서 살아갈 때 불현듯 나타나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영적인 지도자하면 모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수도 생활하고, 40년 하나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한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일하다 지치게 되고, 공허하게 되고, 허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더불어서 나아갈 때 힘을 얻게 됩니다. 내가 힘이 있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는 자신에게 큰 일이 맡겨지자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9절에서,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창조주고, 너는 피조물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내가 합당하게 나타나 주겠다는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20절에 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께서 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21절에서 23절,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을 보기는 봤습니다. 못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를 본 것입니까?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할 때, 이 말씀도 우리가 하나님을 일대일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한다는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등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을 느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임재를 체험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을 본다”라고 할 때의 “본다”의 의미를 우리는 크게 세 가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거나, 하나님과 일대일로 마주대한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음성을 듣는 경우와 우주같이 크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나는 경우입니다.

     

    모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경험으로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신약에서는 유일하게 예수님만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요일 4:12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길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볼 수 있고, 사랑의 존재가 되면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 마더 테레사, 내한 선교사 에스더 레어드 등 그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시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방법,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랑을 함께 나누는 방법, 그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머리, 자기 의, 자존심을 버리고, 십자가 앞에서 겸허히 무릎 꿇을 때, 날마다 마음을 정화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교제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비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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