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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가서 사과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11. 8. 14:00

    창조절 열째 주일(2015년 11월 8일)

    마태복음 5장 23-26절

     

    먼저 가서 사과하라.

     

     

    가. 성령님이 깨닫게 하실 때를 마지막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23절).

     

    본문은 성도라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23절에서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나거든’(밈네스코)은 수동태 디포넌트로 ‘하나님이 생각나게 하시면’이라는 뜻이 됩니다.

     

    원망들을 만한 일 곧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상처 준 일 등을 성령님이 떠오르게 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거기서’라고 했는데 이는 ‘예물을 드리려고 제단에 갔을 때에’라는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는 일이나 재판하는 사건은 상황 설명이고 본문의 핵심은 자신의 잘못이 생각나면 속히 가서 ‘사과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물질로 손해를 입히든, 인격을 모욕한 행위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양심이 곧바로 느끼고 사과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으로 원망들을 일이 떠오른다면 은혜입니다. 성도는 잊고 있던 죄가 기억날 때 이를 죄 용서받을 마지막 기회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라야 합니다.

     

    나. 남에게 상처 준 일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26절).

     

    예수님은 “너를 고발하는 자를 재판정에 들어가기 전에라도 만난다면 급히 사화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25절). 이는 사화(私和)의 긴급성을 촉구하신 말씀으로 상처 준 일이 있으면 빨리 깨닫고 사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 준 일은 쉽게 잊어버리는 반면 상처 받은 일은 오래 기억하는 편입니다(마7:3참조).

     

    본문에서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푼’은 ‘코드란테스’로 두 렙돈의 가치입니다. 렙돈은 ‘비늘’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극히 작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한 푼까지도 다 갚으라’는 무심코 한 언행으로 남긴 작은 상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의미가 됩니다.

     

    예수님은 “계명 중의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19절). 그리고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18:10). 예수님은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눈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내가 남에게 준 상처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아야 할 죄입니다.

     

    다. 잘못한 사람이 먼저 가서 사과해야 합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25절).

     

    본문은 상처 준 사람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해를 끼친 사람이 먼저 찾아가서 사과하라는 말씀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화하라’(유노에오)는 ‘좋은 마음으로 사과하다’는 뜻입니다. 마지못해 하거나 피해를 모면하기 위해 하는 형식적인 사과가 아닙니다.

     

    ‘사과하다’는 말을 보면 능동태 분사로 쓰였습니다. 이는 상처 준 사람이 적극적으로 사과해야 할 책임이 있고, 상대가 받아들일 때가지 사과해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은 상처 준 사람은 사과해야하고, 상처 받은 사람은 사과할 때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마18:22). 이는 상처 받은 사람 곧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 없이 “우리 화해합시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솔직하게 사과해야 마땅하고 보상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보상해야 합니다.

     

    라. 사과하고 화해 받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4절).

     

    잘못한 사람이 사과해야 서로가 화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24절에서 ‘형제와 화목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목하다’(디알랏소)는 ‘화해하다’가 더 적합한 표현이고, 명령형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잘못한 사람은 먼저 사과를 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화해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를 교훈하시면서 화해를 받은 후에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과 작은 죄라도 하찮게 여기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상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에 대해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면서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일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며 범죄를 해결하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마18:18). 또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관계의 법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마7:12). 사과하고 화해 받는 일은 구원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며 받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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