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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2. 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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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요 9:1-14)

     

     

    1. 맹인이 된 이유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고정관념 두 가지를 깨뜨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맹인이 된 것이 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입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9:2)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들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욥기를 보면 욥이 겪는 고난을 보며 친구 엘리바스도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있는가?”(욥 4:7)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 22:4-5)

     

    어떤 한 사회나 공동체에 만연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노예제도를 정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불과 이백년도 채 되지 않은 일입니다.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 이하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의 자녀는 또다시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의 일만이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백정의 자녀는 백정이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과거의 죄의 결과 병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에 걸린 이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 같은 경우는 회당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부정하다는 이유로 성문밖에 외진 곳에서 사람들을 피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제자들도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죄로 맹인이 된 것인가? 아니면 부모의 죄로 맹인이 된 것인가?” 라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잘못된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것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9: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죄와 병이 연관성 있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의 고유성이 있음을 인정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고유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는 말씀은 분명히 과거 지향적인 말씀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지를 생각하라는 미래 소망적인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2. 안식일의 의미

    예수님이 깨뜨리신 또 하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은 안식일에 관한 그들의 율법주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다고 1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풍속은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을에 있는 회당장이 나팔을 세 번 불어 안식일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러면 모든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가게 문을 닫습니다. 랍비들이 가르치는 안식일에 금지된 행동 29가지에는 장사나 육체적 노동, 여행, 오락, 잡담 등이 있습니다. 심지어 1,250m 이상을 걸어서는 안되고, 불을 피우는 일, 음식을 만드는 일, 환자를 돌보는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이야기를 하려면 성경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다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이고, 그 날 일하지 않아도 우리의 먹는 일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는 순종의 행위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날을 구분하셨듯이 인간도 이 날을 거룩하게 구분해야 하는데, 안식일이 노동에서의 해방의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이 날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근본 원리인 풍요와 해방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정신은 잊어버린 채, 율법주의적 고정관념만 남아서, 그 율법을 지키냐, 지키지 않느냐에만 관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러한 의도를 아시고 맹인을 치료하십니다. 맹인은 고쳐달라고 애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 또한 그 맹인을 보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맹인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에게 안식일의 정신은 어디갔고, 형식과 율법만 남았느냐?” “이 맹인이 맹인이 아니고, 너희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모르는 맹인들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예수님은 이 맹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세상의 빛” 임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치료하시는 행위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안식일의 율법을 어겼는지에 대해서만 관심하는 것입니다. 사건의 본질은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3.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하는 이유

    오늘 본문은 불신의 눈을 가지고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메시야를 볼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맹인은 육체의 눈을 뜨는 사건을 통해 믿음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맹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비록 육체의 눈은 뜨고 있었지만 믿음의 눈이 없음으로 인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상태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왜 믿음의 눈을 뜨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세운 기준이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하였던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에서는 율법주의, 고정관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둠의 커튼이 바로 교만이라는 죄입니다(잠 21:4). 교만한 사람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이로써 시기, 분쟁, 비방을 일삼아 결국은 진리를 잃어버린다고 디모데전서에서는 말씀합니다(6:4-5). 그래서 교만이라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까지 능가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심으로”(약 4:6) 결국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도 못합니다.

     

    4.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제 본문을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이라는 한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딤전 2:4), 모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에게서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이란 곧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감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신 일”이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 각자와 우리 공동체,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시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의를 증거 하는데 방해물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교만이 죽을 때, 우리는 믿음의 눈을 뜨게 됩니다. 믿음의 눈을 뜨게 되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게됩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손길을 경험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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