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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벨탑에서 빠져나와 다락방으로 들어가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9. 6. 07:54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번째 주일[20080831]

     

    바벨탑에서 빠져나와 다락방으로

    들어가라(창 11:1-9)

     

    오늘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 투쟁, 다툼의 원인은 상호 대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상호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나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 예를 우리는 성경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의 반응은 “사람이 늙은 뒤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서로 주고받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통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생선이 나왔다면 이 경우도 역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입니다. 주문을 받으며 대화는 하였지만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상호교류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이렇게 상호교류가 일어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를 일컬어 미디엄이라고 하고, 그 매개체인 미디어는 곧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맥루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는 언어뿐이 아니라 글, 소리, 몸짓, 전파 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호교류가 일어날 때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처음엔 언어와 말이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이 통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반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서 “그들”은 야벳과 함의 자손들입니다. 11장 전체는 사실 야벳과 함의 자손들과 10절 이후의 셈의 자손들은 비교하고 있습니다.) 야벳과 함의 자손들은 더 이상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보내시는 주파수에 반응하지 않고 채널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엡 4:18을 보면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고, 마음이 굳어짐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그들은 동으로, 동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찾아 떠납니다. 여기서 “동방으로”로 쓰인 히브리어 믹케넴이란 말은 에덴의 동쪽이란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멀리 멀리 떠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아라랏 산지(터어키)를 떠나 시날 평지(바벨론) 지금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땅에 정착합니다.

     

    성경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들의 타락이 계속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들끼리는 언어가 통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자신들끼리 뭉치기 시작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를 꿈꿉니다. “우리의 힘으로 벽돌을 만들자.”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뭉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은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를 위해서만 살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명을 만든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 만든 물질, 문명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도시와 탑을 쌓습니다. 그들이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하는 목적은 (1)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함입니다(자기 성공). 또한 그러한 일을 위해 그들이 뭉친 이유는 (2) 그들이 지면에서 흩어지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전체주의=공산주의 이론).

     

    이렇게 타락한 인간들은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허황된 일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정말 목숨걸 일에 목숨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 돈, 지식, 능력을 사행성 게임에, 복권에, 부동산 투자에, 자기 성공에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 119:37에서 시인은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않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허탄한 것을 보지 않지 오직 하나님에게 자기 소망을 두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시 146:5).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뭉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목숨거는 사람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고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은 필요 없어, 하나님 없이도 뭉칠 수 있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을 위해 뭉치냐 하는 것입니다. 딤후 2:22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하나님의 일에 목숨거는 사람들과 뭉쳐야 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절입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버리자.” 바벨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혼동케 하셨다. 하나님께서 흩으셨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만든 바벨탑의 특징은 바로 혼돈과 무질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성령 안의 의, 평강, 희락”(롬 14:17), 곧 조화와 질서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 사회는 두 종류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공동체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1)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공동체가 바로 바벨탑을 쌓는 타락한 인간들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들에게는 물질(돈, 권력, 쾌락)이 그들의 가치관의 기준이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바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모으고,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버립니다. 그들이 쌓은 바벨탑은 하나님을 만나려는 목적이 아닌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쌓아 올리는 성공 신화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국은 멸망입니다. 시 1편의 말씀을 한 번 떠올려 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의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는 도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2)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에서는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공동체에는 하나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바로 사랑의 언어입니다. 이천 년 전 120명이 모여 기도하였던 다락방이 하나님이 만드신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였고,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말이 통했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의 큰 일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의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앙 공동체는 지금도 사랑의 언어를 쓰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통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삶을 경험하며 살기 원하십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바벨탑에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생명의 다락방으로 들어오십시오. 세상에서 볼 땐 그 집이 작아 보이고, 모양은 형편없어 보이고, 그 입구는 약하고 험난한 길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계신 다락방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현실로 바뀝니다. 곧 잃어버렸던 하나의 언어가 회복되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다락방의 문을 어서 두드리십시오. 다락방의 입구로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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