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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밝히 보는 일이 제자도의 첫걸음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0. 25. 10:50

    창조절 여덟째 주일(2013년 10월 20일)

    마가복음 8장 22-26절

     

    밝히 보는 일이 제자도의 첫걸음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8:34). 마가복음은 이 말씀을 전후로 구원으로 초청하는 희망의 복음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복음으로 나뉘어집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부터 10장까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핵심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맹인 치료 사건은 제자도와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있음을 주목해서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맹인 치료 행위가 제자도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가. 인간의 무지는 밝히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22절).

    22절입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맹인이 사람들에 이끌려 예수님 앞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맹인을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맹인을 치료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의 의도가 잘못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보고,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만 물질적이고, 육적인 도움을 주시는 수준의 예수를 믿고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한 맹인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을 통해 그들의 영적 무지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조금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18절).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데리고 온 맹인을 침을 발라서 안수하시고 또다시 안수하여 고치시는 행위는 맹인을 데리고 온 사람들의 영적 무지를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맹인이 아니라 진짜 맹인은 너희들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나. 깨닫지 못하면 답을 찾지 못합니다(23-24절).

    예수님께서 이 맹인의 눈에 침을 바르시고 안수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23절). 이 맹인은 눈을 떴으나 아직 온전히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마치 나무처럼 보인다고 하였습니다(24절).

     

    이 맹인은 육적인 맹인입니다. 그러나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영적인 맹인들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의 필요 정도를 채우는 분으로 아는 맹인들입니다. 육적인 맹인은 혼자 힘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맹인은 육적인 맹인 보다 더 위험합니다. 본다고 하지만 온전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고쳐주시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이와 같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보기는 보지만 어설프게 보면 답을 찾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는 척 하지만 핵심을 찾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온전히 알지 못해 엉뚱한 예수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되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가르침대로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정도로만 믿고 따른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희망을 주는 복음에는 ‘아멘’하지만 고난의 복음에는 ‘아멘’으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 예수님께서 밝히 보게 해주십니다(25절).

    25절입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이 기적에서 예수님이 두 번 안수하여 고치신 것은 의도적입니다. 결코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하여 두 번에 걸쳐 치료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어설프게 보는 단계를 나타내시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는 단계로 인도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여’는 ‘디아블레포’로서 ‘(무엇을) 통하여 보다’의 뜻입니다. 사람의 눈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수정체가 렌즈 역할을 하여 사물을 뇌에 인식시킵니다. 이 같은 원리로 성도는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영적 세계를 분명히 바로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이라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니다”라고 정확히 고백했습니다(27-29절).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밝은 눈이 없는 사람은 결국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고 탐심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맹인인 지도자가 맹인들을 인도하는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마12:14). 우리는 예수님의 렌즈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물과 영적인 세계를 바르게 보고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라. 밝히 보아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26절).

    26절에서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자신의 기적 행위가 널리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는 맹인을 고치실 때에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신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따르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기적은 믿음을 주시기 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기적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35절). 영의 눈이 닫힌 사람은 기적만 구하지만,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따릅니다.

     

    예수님은 맹인같은 우리를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영의 눈이 열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경험하며 밝은 눈의 제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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