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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름받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6. 4. 13:21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삼위일체주일[20120603]

     

    부름받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출 35:30~35)

     

     

    이 시간 예배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빕니다.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기는 삼위 하나님이 세우시고, 일하시는 교회의 그 존재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교회는 언제 탄생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을 교회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도행전 2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오순절의 성취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구약의 절기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특별한 날들입니다.(골 2:16) 하나님은 특별한 시간들을 정하시고(창 1:14) 친히 절기들을 정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절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절기를 직접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레 23:4)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무교절에 예수님이 장사 지낸바 되시고,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절기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씩 성취되고 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도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 속에 있는 사건이었고(롬 11:36),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요 14:16)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날 한 자리에 모여 주님 다시 오심을 기도하고(요 16:7), 성령의 능력을 구하던(눅 24:49)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은 사건입니다.(행 2:4)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의미는 교회의 본질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데에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신약에서 ‘교회’란 단어 ‘에클레시아’는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부름받은 자들이 모였으면 다 교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말은 가시적인 교회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모였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을 이루려면 부름받은 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장이 말하고 있는 오순절 새로운 교회 탄생의 의미인 것입니다.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이 가시적인 교회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나님은 가장 먼저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부르셔서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창 2:15)

     

    하나님은 여자도 만드시고 아담에게 붙여주셨습니다.(창 2:22) 즉 최초의 가시적인 교회는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교회의 사명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창 3:6)

     

    이제 오늘 본문과 연관하여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을 부르셨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이유를 출애굽 사건 전에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여기서 ‘섬기다’라는 ‘아바드’는 ‘예배드린다’라는 뜻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예배드리는 공동체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하고 넘어갈 것은 출애굽 사건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말씀은 사백삼십 여년이 지나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출 12:41)

     

    출애굽기 7장 이하를 보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은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 열 번씩이나 징벌을 내리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재앙으로도 애굽을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열 번씩이나 재앙을 내리신 것은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애굽인들의 손에 있는 큰 재물들을 취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열 번째 재앙이 있었던 유월절 밤이 지나고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출애굽기 12장 35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 12:35~36)

     

    우리는 출애굽 하는 과정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 진행됨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며 애굽인들로부터 빼앗은 은금 패물과 귀한 의복들도 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많은 물질을 손에 쥐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취한 엄청난 보화의 마지막 목적은 성막 지을 때 바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도 나와 있고 출애굽기 25장에도 나와 있는데 출애굽기 25장 1절 이하를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물개)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출 25:1~7)

     

    이 많은 예물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 사람들의 것을 다 빼앗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출 15:36) 계속해서 이 예물을 다 가져오라고 한 이유를 출애굽기 25장 8절에서 설명합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8~9)

     

    지금 나에게 물질의 축복이 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주신 궁극적인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물질과 명예, 권력, 성공 이런 것들은 다 수단일 뿐입니다. 모든 일의 마지막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고전 10:31)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 만들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다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 믿으면 뒤따라오는 후손이 잘못 믿게 됩니다.(약 3:1)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할 거룩한 장소 곧 성막을 모세를 통해 짓게 하는 가운데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성막의 설계도를 계시하셨습니다.(출 25:10~21)

     

    그리고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시고서는 실제 성막을 만드는 지혜와 지식과 기술을 주시고, 일꾼으로 일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의 장면입니다.

     

    본문 30절을 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또 34절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도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막 짓는 일을 도우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브살렐을 부르시고 난 다음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31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오홀리압도 마찬가지입니다. 34절을 이하를 보면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난 후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 충만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르시고 그 다음에 성령 충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실력 있고 대단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완벽해서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훈련받고 준비되어 있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부르십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일방적으로 부르시고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십니다.(출 4:12) 상처입고 실패하고 나약할지라도 하나님은 부르신 자를 일으키시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시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따라서 부름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이 땅에서 역사하시는 통로입니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부름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본문에서 “하게 하시고”가 일곱 번 나오는 것에 주목해 봅니다.

     

    31절에 “하게 하시되” 32절에 “고안하게 하시며” 33절에 “하게 하셨고” 34절에 “하게 하시되” 35절에 “하게 하시되” “하게 하시고”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이 ‘하게 하시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부름받은 성도 여러분, ‘일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병도 고치고, 전도하셨습니다.(눅 5:17)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능력을 주셨습니다.(눅 9:1)

     

    부름받은 자들이 모였다고 교회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름받았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서 교회의 일을 해야 됩니다.

     

    사람 모양이라고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야 사람이 되듯이(창 2:7) 부름받았다고 저절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부름받은 자라면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렘 32:17)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교회의 목적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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