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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의 죄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12. 22. 10:19

    Cain and Abel


    대강절 넷째주일[20081221]

     

    분노의 죄(엡 4:25-32)

     

    몇 개월 전 LA에 사는 한인 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부인이 남편을 총기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노를 내면 대인 관계가 어려워지고, 단절되기도 합니다.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 분을 쉽게 내게 되면 마귀가 들어올 발판을 마련하고, 파멸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스리는 자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자가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의 상태에서 예수 믿고 영생을 얻는 인간의 상태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은 그냥 인간일 뿐입니다. 어떨땐 짐승만도 못한 인간 소리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요, 성경은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상태라고 말씀합니다(엡 2:1). 성경은 예수를 믿기 전의 인간을 죄인이라 부르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에 머무는 인간은 진노의 자식입니다. 육신이 하고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의 법대로 사느냐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느냐의 차이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안전 추구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업이 있습니다. 일을 합니다. 일을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일합니다. 정직하게 일합니다. 일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일을 합니다. 부를 목적으로 일을 합니다. 일하는 방식에서 부정직은 간과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 뭔가 감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인간에게는 자연적인 욕구가 있고, 자연적인 신체 기능들이 있습니다. 식욕이 생기고, 성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식욕과 성욕을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인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공격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음식을 씹으면 침이 나오고, 눈앞에 어떤 물체가 갑자기 나타나면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는 무조건적 반사와 같은 반응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고의든 그렇지 않든 외부로부터 분노를 일으키는 현상이 있다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분을 내서 죄를 짓지 말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분노를 잘 다스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성의 문을 열어주면 적군이 들어오듯이, 분을 계속 품고 있으면 마귀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라는 감정을 잘 해결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이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아름다운 성품으로 만들어지고, 형통한 삶을 사는 열쇠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분노라는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성경은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피하든지 인내하라.

    그리스도인은 분노가 일어날 때 인내해야 합니다. 잠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하였습니다.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바로 화부터 내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민수기 20장에 보면, 출애굽 후 가데스에서 먹고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였는데, 모세는 분을 내었습니다. 12절을 보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분을 내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까닭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나를 의도적으로 화나게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같은 조직에 있는 경우 동석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사 26:10) 오래참음은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2. 기도하라.

    분노가 날 때 그 자리를 피하든지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인간답게 사는 사람은 참을 인(忍) 자 세 번 써가며 인내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내할 뿐만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분노가 일 때 그 자리를 피해도, 상대방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내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하십시오. 다윗이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많은 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나이다.” 그 다음 어떻게 기도합니까?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시 3) 내 적이 곧 하나님의 적이란 말입니다.

     

    분노가 일 때 미워하는 사람을 자꾸 생각하면 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자꾸 생각나게 하고, 분한 감정을 자꾸 일게 해서 마음을 흔들어뜨리고 빼앗는 일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지키십니다.

     

    3. 십자가를 묵상하라.

    나를 공격할 때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 뒤에 있는 사탄의 작전을 간파해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처럼,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내 대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적입니다. 나를 구해주십시요!” 이런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 단계도 넘어서야 합니다.

     

    분노를 다스리고 정복하는 길은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을 때 비로소 생깁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으면 용서의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벧전 3:8-9,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분노를 일게하고, 나를 속상하게 하는 그 영혼을 위해 복을 비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 영혼의 일그러진 모습은 하나님도 슬퍼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 영혼을 나에게 보여주셨으니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복 주시기 위함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줄 아는 자, 그가 나중에는 더 큰 복을 받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사랑하는 힘, 용서의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하다 27년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젊음은 감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는 72세의 나이에 감옥에서 나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감옥에 가둔 백인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를 부통령으로 부릅니다. 만델라는 분을 품고 산 것이 아니라 용서의 힘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강도가 높은 쇠덩어리라도 수천도의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녹아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용광로보다 뜨거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노를 가질 때 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 사람은 칭송받을 것입니다. 선인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기념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의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닌 우리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 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분노를 녹이고, 죄인도 용서하는 힘이 됩니다. 대강절에 우리의 죄를 덮으신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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