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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살리는 인생을 살아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6. 8. 23:52

    성령강림절 후 셋째주일(20080608)

     

    사람을 살리는 인생을 살아라.(출 20:13)

     

    1.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 살인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선민들을 향하여 이 짧은 한 마디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이 택하신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살인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그렇습니다. 살인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살인 행위는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고, 교회 공동체를 와해시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해자의 가족들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에 대한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원래의 즐거움(에덴)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허락해줍니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 아벨을 “때려서 죽이고 맙니다.” 그 결과 가인의 자손과 아벨 대신 주신 셋의 자손은 전혀 다른 족보를 형성하고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LA 한인타운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국인 70대 할아버지가 65세의 한인 할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이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살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친한 사람이나 한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인류는 가정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즐거움을 살인으로 파괴해 버리는 죄를 지어왔던 것입니다.

     

    2. 사탄은 사람의 감정을 이용한다.

    그러면 살인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입니까? 살인 행위는 사탄이 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따라서 희노애락의 인간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분명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감정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고, 그 틈을 노려 악행을 저지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감정일지라도 감정 자체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Amplified Bible의 표현에 의하면, “When angry, do not sin”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분노라는 감정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인해 화를 터뜨리거나, 상대방에게 복수하는 행위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살인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탄의 간계에서 비롯되고, 그 결과 공동체가 파괴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사탄의 도구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하지 말라”라는 부정형의 명령어는 긍정적으로 말하면, “생명을 살려라, 인격을 존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3. 주님의 생각을 묵상하라.

    먼저 우리는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된다고 긍정적으로 마음먹으면 되는 것이고,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발명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조수가 “선생님, 필라멘트를 발명하려고 벌써 90가지의 재료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필라멘트를 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으니,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자네는 그것을 왜 실패로 생각하나,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고, 안 되는 재료가 무엇인가를 90가지나 알아낸 아주 성공적인 실험이었다네.” 에디슨이 연구를 시작한 지 13일째 되는 날,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드디어 전류를 통해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실패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성공적인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계속 부정적으로만 봅니다. 해 보지도 않고 두려워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합니다. 노력해 보지도 않고 포기합니다. 그래서 결국 생각도 훈련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모두 훈련되어진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예수님의 생각을 느끼고, 예수님의 기질로 변화되는 훈련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침마다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세리 마태와 세리장 삭개오에게 먼저 다가오셨고,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는 두 맹인들의 눈을 긍휼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을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마음처럼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친절이 나오고, 용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우리의 기질이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쁨과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라는 사랑의 기질(갈 5:22-23)을 사모하시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4. 주님의 언어를 배우라.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혀를 다스리는 일은 분명 훈련입니다. 야고보서 3장 7-8절을 보면,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혀를 다스리고 제어하는 것은 개나 고양이, 말을 훈련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결국 자기 입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말, 사랑의 언어, 생명을 살리는 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훈련으로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생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언어가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말의 실수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생의 위치에 있으면 많은 사람을 상처주기 쉽습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은 이런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우리는 우리의 혀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말의 실수가 없도록 재갈 물려야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왕이 두 명의 광대에게 참 어려운 일을 시켰습니다. 왕은 한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오라” 하였고, 또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나쁜 것을 가져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며칠 후 두 명의 광대가 돌아왔습니다. 왕의 말에 따라 가장 좋은 것을 찾은 광대가 보따리를 풀었더니, 거기에는 “혀”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나쁜 것을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더니, 거기에도 “혀”가 담겨 있었습니다.

     

    나의 신체의 일부인 작은 혀를 내 기분과 감정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사탄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세 가지의 여과기를 통과시켜 말하는 습관과 지혜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진실한가? 두 번째 여과기는, 진실한 말이라 할지라도 지금 꼭 필요한 말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친절한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말, 격려의 말, 위로의 말, 구원의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혀도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혀를 다스릴 지혜를 구하고, 성령님께서 내 혀를 다스리시기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5. 성령님의 다스림으로 행동하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기위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닮고, 주님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존귀히 여김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강도 만나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누가 구했습니까?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니였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율법교사의 시험하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신 까닭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는 “생명을 살려라.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살인이라는 것이 단순히 죽이는 것 그 이상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을 보면, 형제에게 노하고, 바보라고 욕하고, 미련하다고 인격모독을 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각, 말, 행동이 아니고서는 모두 사람에게 상처주고,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행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잃어 버린 영혼을 구하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분과 감정으로 우리 자신을 통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존재가 되는 길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릴 때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성령님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막힌 담을 헐고, 상처 있는 곳을 치유하고, 평화를 만들고, 사랑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사람을 살리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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