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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4. 7. 16:20

     

    부활절 둘째 주일·선교주일[20130407]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라(눅 5:1~11)

     

     

    예수 그리스도의 ‘진지한 증인’(눅 1:3)이기를 자처하는 복음서 저자 누가는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아름다운 이야기 형식으로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본문의 ‘고기잡이’ 사건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이미지는 예수님 활동에 관한 은유이자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의 정체성과 가야할 방향에 대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보통 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앞뒤 문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는 본문 앞의 구절에 있습니다. 이 땅으로 보냄 받으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 4:4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우연한 일들을 소재 삼아 종종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종류의 밭이라는 환경을 소재로 ‘마음’을 설명하는 부분도 그렇고, 길을 가시다 마주친 무화과나무를 보고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히는 짤막한 설명에 이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진다’라는 이야기를 당시 예수님이 설교하시고 계시는 장소인 호숫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기잡이’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계신 곳은 게네사렛 호숫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려와서 예수님 주위를 에워싸고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1-2절)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복음의 증언자 누가가 예수님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듣고 있던 유두고는 말씀을 경청하지 못하고 졸다가 그만 삼 층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행 20:9)

     

    누가는 예수님의 선포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면서 듣고 믿는 자에게 일어날 놀라운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이천년 전의 현장 속으로 우리도 들어오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일어난 ‘고기잡이’ 기적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도 성경을 읽던지, 설교를 듣던지, 찬송을 부르던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 체험이 일어나게 된다는 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에게 설교하시는 가운데 밤 동안 고기 잡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설교의 장소를 호숫가에서 배 위로 바꾸시고는 설교를 계속하십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선뜻 자신의 배를 내어드린 부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밤새 일했기 때문에 피곤하였을 것이고 그날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기분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요청에 배를 쓰시도록 하고 또 앉아서 예수님의 설교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때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귀한 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드로는 며칠 전 자신의 집을 방문하신 예수님을 뵈었고 그날 열병으로 누워계신 자신의 장모를 고치시는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눅 4:38~39)

     

    누가는 처음 제자로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이미 4장에서 복선을 깔고 있는 것입니다. 장모의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베드로는 경험하였는데 이 날은 자기의 배 위에서 설교를 하고 계시니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심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정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상에서 호숫가에 있는 군중을 향해 설교를 다 마치시고는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신 말씀은 명령입니다. 원문에는 이 말씀이 두 개의 명령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깊은 데로 나가라’는 명령과 ‘그물을 내려라’는 명령입니다.

     

    앞의 명령문의 주어는 2인칭 단수이고, 다음 명령문의 주어는 2인칭 복수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결단으로 비롯해서 공동체가 함께 이적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경험하면 그 영혼을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히 4:12)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그 믿음이 예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도록 이끈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인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그렇게 베드로는 다시 배를 저어 예수님이 가라고 하시는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졌더니 밤새 잡히지 않았던 물고기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혀서 결국 동료의 도움으로 두 배 가득 물고기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꾼 누가는 한 배로 나갔다가 두 배로 돌아오는 ‘고기잡이’ 기적을 그리며 장차 사도행전에서 전개될 복음 전파의 이야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유대 땅에서 시작하지만 이방 땅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분부를 고기잡이 사건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8 참조)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세심한 전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음이 생겼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롬 10:17 참조)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고백하는 단계에 이릅니다.(사 6:5 참조)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비로소 제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목적이 하나의 사명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행 10:24 참조)

     

    따라서 본문의 핵심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고, 믿음과 순종의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임재 체험과 나의 죄성을 발견하고 죄인의 구주되시는 예수님께 전적 의존하는 과정 없이 쉽게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라’는 사명은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사명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에서 ‘취한다’는 단어의 동사형 ‘조그레오’는 ‘살아있는 상태로 잡다, 생명을 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는 일입니다.

     

    죽어가는 자를 살려서 내 제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하고 예수를 따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이 사명을 망각하는 순간부터 기독교는 자기를 드러내고 바벨탑을 쌓는 불의를 반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이 사명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두 가지만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제자라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의 사명은 사람들을 지옥의 진노에서 피하게 하는 일이고,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내는 일입니다.(잠 24:11)

     

    멀리 생각할 것 없습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부터 그 영혼이 지금 심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영혼을 속히 생명으로 구해 내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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