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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명 의식을 붙들어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7. 2. 5. 11:00

    주현 후 5주(2017년 2월 5일)

    누가복음 13장 31-35절

     

    사명 의식을 붙들어라.

     

     

    가. 사명 의식을 붙들어야 한다.

    {“참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하리라.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33절).

     

    본문은 예수님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히 그리고 기꺼이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계속해서) 가야만 한다’(δει...πορευομαι)는 강한 의지를 갖고(현재 능동), 누가 시키거나 마지못해 가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수동태 이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사명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도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밝혔습니다(행20:24).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자신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사명 의식을 붙들어야 합니다.

     

    나. 장벽을 피하지 말고 넘어서야 한다.

    {바로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였다. “여기를 떠나서 피하십시오.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31절).

     

    성도는 끝까지 받은 바 사명 의식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명자의 길이 평탄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명자 예수님에게 위기의 상황이 왔음을 몇몇 바리새인들이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미 세례자 요한을 잡아 죽였던 헤롯이 예수님도 죽이려고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눅9:9 참조).

     

    헤롯의 욕망을 아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피하라고 권했지만 예수님은 여기에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운명론을 언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악한 왕들이 선지자들을 죽여 예루살렘을 피로 물들게 했던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요세푸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선지자적 소명이 진하게 배어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도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서 예기치 않는 장벽을 맞닥뜨릴 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어려움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수를 써서 회피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일에 어떠한 희생과 인내가 따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존귀한 일입니다.

     

    다. 부르신 분을 생각하며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그 여우에게 ‘오늘과 내일은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을 온전히 고치다가 사흘째는 내가 완전해지리라’고 전하여라.”}(32절).

     

    예수님은 헤롯의 가해 소식을 전해 듣고도 전혀 위축되거나 동요됨 없이 사명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을 온전히 고치겠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 곧 사람들을 치유하고 해방케하는 사역을 흔들림 없이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명을 다 마치고 그 이후는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셨습니다(τελειοω 현재 수동). 이러한 확신은 하늘 아버지와의 깊은 만남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애가(哀歌)가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고, (하나님에게) 보냄 받은 자들을 돌로 치고 있는 자야,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아 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더냐? 그러나 너희들은 거부하였도다”(34절).

     

    예수님의 확고한 사명 의식이 어떻게 변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로 아버지를 아는 마음 곧 하나님과의 하나됨에서 나오는 힘이었습니다. 여기서 ‘모으려고 하다’(επισυναγω)가 중요한데, 이는 επι(near, above)와 συν(with)과 αγω(bring)가 합쳐진 말입니다. ‘하나님 곁으로 모아들이다’(인도)는 의미도 되고, ‘위를 향해 함께 불러 모으다’(만남)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만나길 원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창1:2 라하프 참조). 이러한 하나님을 자각할 때 우리는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라.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이 임한다.

    {“잘 들어라, 너희들의 집은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찬송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들은 결단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35절).

     

    신앙의 길은 두 가지입니다. “낮은 길이냐? 더 높은 길이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높은 길로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낮은 길은 마지 못해 믿는 신앙이고, 억지로 끌려가는 신앙입니다. 성경은 이 길로 가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버린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고전10:5 참조).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릴(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여, 찬송 받으시옵소서”라고 외칠 때가 올 것이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now it's too late, MSG)고 경고하셨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눈물을 떠올리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하늘의 사명을 끝까지 붙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자를 반드시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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