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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를 진주로 만드신 예수님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1. 6. 08:21


     서초교회 신년 새벽기도회 “임마누엘로 살면 모든 것은 잘되리라”에서의 설교[20090106]


    상처를 진주로 만드신 예수님(요 2:1-11)

     

    임마누엘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1월 6일 주현절 아침, 서초 제단에 모인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의 정도를 걸어라!” 2008년 7월 패스브레이킹 워크샵에 참석한 저는 김석년 목사님이 하신 이 말씀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마치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헬라인처럼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였고, 또한 제가 감동되었던 것은 한 번의 워크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섬기는 마음으로 함께 동역하고자 하는 패스브레이킹의 비전을 제시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의 정도를 걸어라.”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정도를 걷는다고 해서 누구나 교회를 수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다른 방법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정도를 걸으며,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나가는 서초교회는 저에게 좋은 모델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작은 교회가 신앙의 정도를 걸으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함께 기도하며 지도해주시는 김석년 목사님이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제사장의 타락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6절)

    예수님도 성전 뜰에서 제물을 팔며, 환전하는 사람들을 보고 채찍을 드셨습니다. 당시 신앙의 열매는 없고, 돈에 눈이 먼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경고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교회를 일구고 난뒤, 목회자의 아들이 교회를 이어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40세도 안된 아들이 몇 만 명 교인의 교회에 담임이 되어도 주변 사람들이나 교단 차원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교회를 내 소유인양 착각한다거나 그 교회의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 보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한 시대에 목회를 일군 그 목회자가 보여준 내면 세계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후대에 보여준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목회 한 것이 아니라 헝그리 정신으로 목회한 결말 때문입니다.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 내 교회가 우선 살고보자는 생각이 팽배한 영적 암흑기의 우리 시대에, 깨어있는 영적 지도자가 있음을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대는 좋은 모델교회가 많이 필요합니다. 좋은 모델 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작은 교회들이 건강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더욱 양극화되고 목회자는 더욱 타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패스브레이킹 워크샵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의 긍휼로 사람을 바라봅니다.

     

    작은 교회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 나옵니다. 세상이 관심 갖지 않는 사람이 옵니다. 학교 선생님이 포기한 학생이 나옵니다. 우리 동산교회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 두 명이 나옵니다. 주일 오후 우리 교회 집사님과 제가 영어를 가르칩니다.

    집사님은 문법을, 저는 회화를 지도합니다. 집사님은 영어 학원 선생입니다. 한번은 집사님이 답답하다며 말합니다. “따라오지도 못하고 할 의지도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포기한 애들, 교회마저 포기하면 그 아이들에게 관심가질 사람이 없을 겁니다. 집사님 마음 압니다. 다시 한 번 힘내시고, 예수님 마음으로 가르치자구요.”

     

    일일이 작은교회의 형편을 다 말하기 어렵지만 이런 작은 교회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함께 동역하고자하는 패스브레이킹 연구소가 있어 행복합니다. 작년 7월 이후로 저는 새벽마다 김석년 목사님과 패스브레이킹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약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끙끙 앓고 그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런 제가 2006년 말에는 저로서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같은 목회자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저는 부담임으로 섬기던 교회에서 나오게 되어 새로운 사역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저희 부부를 같이 면접 보겠노라 해서 갔습니다. 제 아내에게 저의 장단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내 앞에서 그리고 그곳에 함께 있던 부목사들 앞에서 인격적인 모욕감을 주는 말을 들었고, 그렇다고 그 교회에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 상처가 저에게는 화가 되고, 증오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낼 자존심마저 다 앗아갔습니다. 교회에서 나왔으니 수입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전화 오는 사람도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 이러다 죽게되는구나!” 저는 10여개월 이상을 거의 혼자, 사역지도 없이 지냈습니다. 눈으로 책을 보지만 책이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시선이 멈추게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켜라!”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이 상처들을 값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 그곳에서 나 자신의 마음을, 나의 진정한 본질을 만난다. 상처가 있는 의사는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안셀름 그륀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상처란 하나님을 경험하는 본질적인 장소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륀의 말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보지 않고, 상처 자체의 의미를 보게 하였습니다. 마치 상처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가 발견한 보물상자와 같은 것입니다. 목말라 죽어가는데 고철상자가 왠 방해거리인가 해서 버려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상자 안에 물과 지도, 나침반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상처는 사막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보물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시편 146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약한 나를 더욱 강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적으로 강한 존재가 되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좀 더 강해지고, 그러나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마음을 품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이 나를 살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첫 이적 사건인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우리의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는 임마누엘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찬미되고 있습니다.

     

    축제의 자리 막 결혼한 부부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가 없어졌을 때 이 사실을 예수님의 모친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모친은 하인들에게 예수의 지시를 따를 것을 명하고, 예수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말씀합니다.

     

    이 항아리는 원래 포도주를 담아두었던 항아리가 아닙니다. 정결예식을 위해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물을 가득 담으라고 합니다.

     

    이 항아리에 물이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을 더 부어 가득 채우라 명하여 가득 채웠더니 그 순간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항아리에 담겼던 물은 우리 모든 인간의 연약함, 불완전성, 죄악성, 사랑 없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새로운 물이 아닙니다. 완전히 질적 새로운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은 이제 좋은 포도주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그때의 이 사건을 보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5-56)

     

    물을 가득 채우는 순간에 올라 온 포도주의 거품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 사랑의 풍성함과 신선함 그리고 기쁨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진정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흠뻑 젖게 하시는 포도주가 되십니다.

     

    내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순간, 나는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약한 자가 강함을 얻고, 불완전한 자가 온전해지며,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사랑의 존재로 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의 사랑이 차고 넘치는 새 포도주가 우리에게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영적 일치로 우리를 초대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마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우리를 혼인잔치의 손님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베푸는 이 포도주를 마심으로 주님이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임마누엘의 신비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안의 상처를 진주로 변화시키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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