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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9. 3. 23. 22:20

    사순절 제4주[20090322]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민 21:4-9)

     

    1. 김승학 씨 간증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자 주치의로 일했던 김승학 집사가 시내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오즈산이라고 밝힌 떨기나무라는 책을 읽으며, 저는 그 동안 성경의 지리에 대해 심각하게 관심하지 않았고,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승학 씨는 자신의 경험담과 출애굽 역사의 증거들을 이 책을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분의 간증을 들으며 크게 은혜 받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주치의로 섬기던 마지드 왕자가 한번은 자기 보고 아버지라고 불러보라고 합니다. 김승학 씨는 말하길, 자신은 왕자님을 아버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접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하고 불렀더니, 왕자는 자기를 껴안더니 이제부터 너를 내 양아들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라는 나라에 한국인 출신 왕자가 나올뻔 한 것입니다. 김승학 씨는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김승학 씨는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왜 그랬겠습니까? 사우디의 왕자가 된다면 당연히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 신자가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왕자는 김승학 씨를 보고 “You are real Christian!”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간증을 들으며 이 분이야말로 부귀영화와 예수님을 바꾸지 않은 진짜 그리스도인이구나, 이 분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참된 신앙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

    오늘 본문의 내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고센에서 가나안까지 몇 달이면 도착할 길을 광야에서 40여년 동안 지내게 만드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있는 곳은 에돔 땅의 변경에 위치한 호르 산입니다.

     

    민수기 20장 21절에서 보는 바,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에돔의 영토로 지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길을 따라가다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습니다. 원래 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생긴 것입니다. 에돔을 통과해서 가면 편했을 텐데, 우회하여 갔가는 것은 광야 길, 험한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들고, 먹을 것도 없어 이제 죽게 되었노라고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하나님은 불뱀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원망을 멈추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회개합니다. 그리고는 모세에게 매달려 살려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물린 자는 이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는 약속을 주십니다.

     

    3. 불평은 불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세 가지 정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어디서 나왔는지 눈 여겨보아야 하겠습니다. 4절을 보면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고 그랬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왕래하던 에돔 땅을 통과하는 길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로 가면 가나안에 빨리 가는 길이라 백성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우회하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으로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방식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내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돈을 벌 때도 이윤을 많이 남길수록 돈을 벌 것 같습니다. 일요일에도 장사해야 돈을 더 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하나님은 정직하게 돈을 벌라고하십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겠다”(말 3:10)고 약속하십니다.

     

    신앙생활은 내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즉각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입에서 감사가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감사가 떠난 입에서는 불평과 원망만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29:5을 보니까,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먹여주시고, 하나님이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불만 했습니다. 길을 우회한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평, 불만, 원망, 다 그 원인은 어디서 비롯되었다구요? 불신앙에 기인합니다. 불평은 결국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가장 큰 죄입니다. 이와 반대로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신앙의 표현이 입술로 감사하고, 기도로, 찬양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몸으로 표현하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으로 예배드리는 것, 우리 몸으로 산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불평은 불신앙의 표현이요, 불신앙은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는 거짓말해서는 안됩니다. 도둑질해서는 안됩니다. 살인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것도 큰 죄입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가장 큰 죄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자기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불신앙의 대가는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대가로 불뱀을 백성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불뱀은 붉은 반점들이 있는 독사인데, 사람이 물리면 고열이 나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불뱀을 심판의 도구로 삼으셨을까요? 불뱀은 광야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하고 위험한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으로 고통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그동안 하나님이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14절 이하를 보니까,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보호해 주셨듯이, 독사는 이미 광야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에 불평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으로 심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3,500여년 전 광야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감사를 모르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불뱀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를 모르고, 여전히 자기를 믿고, 자기 방식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원망만 한다면, 이 시대의 가장 흔한 심판의 도구로 하나님은 무엇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물질의 노예인 시대에는 물질이 가장 흔한 심판의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5. 구원은 약속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민수기의 뜻은 백성의 수를 센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인구조사를 통해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사람의 수를 계수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민수기라는 이름과는 역설적으로, 민수기가 말하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군사의 수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현재적으로 따르고 순종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 민수기가 말하는 진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뱀에 불리고서야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정확히 고백합니다.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정확한 자기 죄의 고백과 모세의 중보기도로 하나님은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여러분 25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동했을 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밤에는 텐트치고 잤을 것이지만 그 외 시간에는 무엇을 했겠습니까? 모세의 설교를 들었을 것이고, 만나를 찧어서 삶아먹고, 구워먹었을 것이고, 또 무엇을 했겠습니까? 돌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라오즈산 주변에는 신발 끈이 풀린 샌들 그림, 애굽에서 보았던 황소 그림, 아몬드나무 모양의 금 촛대 그림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장대에 달린 놋뱀 그림도 바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분명 놋뱀을 쳐다보고 열병에서 나은 사람이 그렸을 것입니다. 놋뱀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쳐다보라고 한 바로 그 장대 위의 놋뱀을 본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육안으로 보는 십자가는 나무일뿐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입니다. 사형 틀에서 죽으신 예수님,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 예수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죄악의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 시대에 고통 받는 자녀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다셨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리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5,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모두는 불뱀에 물린 사람들입니다. 살려면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 하나님을 원망했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7장 7-9,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불뱀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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