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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3. 11. 01:00

     

    사순절 넷째 주일[20130310]

     

    생명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라

    (고후 2:12~17)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기를 ‘주의 날이 도둑 같이 갑자기 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벧후 3:10)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 것’을 강권합니다.(벧후 3:11)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아름다운 향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십자가 복음을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으로 시작됩니다.(롬 10:10) 십자가 복음이 전부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향내가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구별된 신앙인의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5절)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향수 냄새가 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면 그리스도의 향내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향기’로 비유하고 있는 표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롬 8:9)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란 곧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지만 특별히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자 할 때는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안에 개입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우리가 하는 일에서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느낌이 풍겨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이고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관찰하는 보디발의 눈에는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보였다고 말합니다.(창 39:3) 성령이 내주하시게 되면 상대방이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함께 있는 사람에게 영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리스도의 향내가 드러나고 있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는 하는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7절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기서 ‘혼잡하게하다’(카펠류오)는 말의 원래의 의미는 ‘말씀을 팔아 이득을 챙긴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익의 방도로 삼아 남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딤전 6:5)

     

    이렇게 말씀을 팔아먹는 장사꾼 같은 사람들로 인해 복음이 변질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파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십자가에 무슨 구원이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재림과 심판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며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벧후 3:4)

     

    믿지 않는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허튼 소리라고 조롱하고, 사망의 냄새가 난다고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십자가의 복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생명의 향으로 진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본문 16절이 그런 의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주일에는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하면 보통 ‘무슨 낙으로 사냐?’고 되묻곤 합니다. 신앙의 눈이 없으면 신앙의 세계는 즐거움이 없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즐거움이 없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이 세상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란 이렇게 세상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인데 성경은 이것을 ‘부름 받은 자의 구별된 삶’이라고 말합니다.(벧전 2:9)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 것을 명하시면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레 1:9) 번제란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불태우는 제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내 자아를 죽이고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일 곧 온전한 예배자로 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름다운 향이 되는 것입니다.(계 5:8)

     

    바울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다운 향이 되기 위해서 복음을 순전하게 지킬 것을 부탁합니다.(17절) 복음을 순전하게 받아들이고 지켜나갈 때 그리스도의 향기는 더욱 진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로 진하게 퍼져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었던 것처럼(요 10:10)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하게 드러날수록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는 강하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믿음에서 더욱 큰 믿음으로, 성령에서 성령 충만으로 계속 깊이 들어가야만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절) 사도 바울이 이렇게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말입니다.

     

    복음의 전파는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희생과 사랑, 섬김과 순종의 방식으로 상대를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되 끝까지 순수하게 지켜 행해야 합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말씀하시길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계 2:19)

     

    그러나 이어 두아디라 교회에 책망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세벨을 용납한 죄’이라고 지적하십니다.(계 2:20)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순결한 복음이 아닌 세상 정욕과 타협한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는 우상 숭배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가 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받을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계 2:22)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주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실재입니다. 천국은 세상 낙을 즐기다가 들어가는 그런 곳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승리의 안식처입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만 재림하실 심판주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다는 약속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붙들되 끝까지 순수하게 지켜야 합니다. 복음을 희석시키는 일과 우상 숭배하는 일에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십자가의 복음이 아름다운 향내로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이유는 하늘 보좌의 소망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언제나 끼워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향이 진하면 진할수록 때로는 이 땅에서 고난과 박해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천국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 끝까지 지켜 행하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전파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향기들이 되어 최후 승리의 영광을 얻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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