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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행으로 성령 충만한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8. 24. 22:00

    성령강림절 후 열한째 주일(2014년 8월 24일)

    마태복음 12장 43-45절

     

    선행으로 성령 충만한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가. 이 세대가 더욱 악해지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45절).

     

    본문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전에 거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예화를 통해 악한 세대의 모습을 비유하였습니다.

     

    여기서 악한 세대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선민의 특권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부패하였고, 지도자들은 타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표적만 구하는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였습니다(마12:39). 예수님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시며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마12:34). 마음에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마귀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을 채우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악한 생각과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들로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은 더러운 귀신이 그의 주인이라는 증거입니다(마15:19).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님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세대는 더욱 악한 세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세대는 어떻습니까? 시대의 흐름이 왜곡된 성문화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잔인해져 갑니다.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은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마저 부를 세습하고 누리는 기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 안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오는 세대는 더욱 악해질 것입니다.

     

    나. 집이 비어있는 상태는 결코 안심할 형편이 아닙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43-44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고 하는 것으로 귀신에게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사람으로 비유된 집이 비어있다는 것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분사 ‘비어 있는’은 ‘스콜라존타’로 누가복음에는 없는데 마태복음은 의도적으로 첨가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일상적인 헬라어로는 잘 쓰지 않는 아주 예외적인 말로 ‘매이지 않은, 차지하지 않은’(unoccupied)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고 있거나, 누군가에 의해 점유되지 않은 무활동, 무방비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무감각한 상태는 악한 영들도 활개하기 좋은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마12:28). 같은 맥락에서 이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일하시는 것처럼 악한 영들도 사람에게 들어오고 나가고를 자의로 합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귀신은 달려듭니다. 사람이 넋 놓고 있다간 귀신의 밥이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벧전5:8).

     

    다. 비어있는 집에 주인을 제대로 모셔야 합니다.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44-45절).

     

    본문에서는 ‘그 집이 비어있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비어있는 상태란 아직 아무도 그 마음을 점령하지 않은 상태라는 뜻도 되고, 죄 용서 받고, 회개한 상태도 됩니다. 후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마음을 비우는 훈련은 왠만한 종교에서는 다 가르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도 예수님의 공로로 죄 용서 받음을 가르치는데, 이것을 구원의 전부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비어있는’ 상태는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속해서 비어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비어있는 상태는 언제든지 악한 영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오히려 회개하고 다시 타락하면 그 형편이 더욱 심각해진다고 경고합니다. 베드로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벧후2:20).

     

    우리 안에 선한 주인을 제대로 모실 때에만 악한 영이 자신이 주인인 체 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회개, 형식적인 신앙생활, 반쪽자리 헌신은 악한 영이 좋아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성령님을 내 안의 주인으로 항상 모셔 들여야 합니다.

     

    라. 선행으로 성령 충만한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45절).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기도하고 신앙고백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감각으로 느끼는 가운데 너무 쉽게 우리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악한 영의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귀신 역시 악한 인격과 초자연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온갖 악한 유혹으로 역사하여 범죄 하도록 이끕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날마다 고백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 마음을 성령님이 거하시기 기뻐하는 환경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약4:7). 구원은 죄 용서 받고, 몸의 질병,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하나님 나라의 좋은 표적을 경험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믿음과 선행으로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으면 그의 장래는 얼마든지 비참해 질 수 있습니다(히6:6).

     

    잡초는 제거해도 계속 돋아납니다.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제거한 자리에 꽃을 심는 것입니다. 나의 소유권은 내가 아닙니다. 사탄에게 내어 주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소유하셔야만, 성령님이 다스리셔야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습니다. 죄와 싸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일들을 하면 성령 충만한 생활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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