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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는 복음을 담아내야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1. 18. 06:00

    주현절 후 둘째 주일(2015년 1월 18일)

    누가복음 5장 36-39절

     

    성도는 복음을 담아내야 합니다.

     

     

    가. 성도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38절).

     

    예수님은 새 옷과 새 부대라는 비유를 통해서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재미있게 그리고 심오하게 설교하셨습니다. 성도는 새 부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부대’(아스코스)는 ‘아스케오’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실천하다, 노력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새 부대가 되라”는 가르침에는 단순히 “새 포도주를 담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 “새 포도주를 담아내어야 한다”는 실천적 요청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냥 담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내고 흘러넘치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시게 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함으로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성도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5:16).

     

    나. 누더기 신앙은 위험합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36-37절).

     

    본문에서 새 옷과 새 부대는 성도를 상징하는 비유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새 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옷의 옷감 일부만 떼어서 낡은 옷에 붙이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누더기 신앙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온전히 일치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과 어울리는 삶입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진리는 받아들이고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 같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신앙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전이 아닙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7:7). 이런 말씀은 누구나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가치관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막10:43-44).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받고 싶은 진리만 받으면 누더기 신앙이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영생의 길을 물으며 자신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누더기 신앙은 결국 스스로 망가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합니다.

     

    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단호히 버려야 합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39절).

     

    본문은 부분 진리를 받아들이는 신앙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배우고도 우리 안에서 제거되기를 거부하는 세상 정욕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생각을 기준 삼아 계속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유혹합니다. 이렇게 온전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꾸 우리의 본성이 세상 욕심에 미련을 두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39절은 그러한 세상 정욕을 단호히 끊어버려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사람들이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만 말하고 새 것을 마셔 볼 생각을 아예 안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래된 포도주가 나쁘다는 문자적인 뜻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가치관, 생활방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은 애굽에 남아있는 모든 미련을 끊게 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며 세례 받는 것은 홍해 바다를 건넌 것처럼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식입니다. 예수님 믿기 이전의 세상 가치관을 단호히 버려야만 새로운 피조물로서 온전하게 복음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고후5:17)

     

    라. 하나님은 복음과 어울리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36절).

     

    예수님은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으니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의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눅9:6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이전의 나의 생각과 말과 태도, 습관을 버려야 복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됩니다(엡4:22).

     

    성도는 하나님의 가치관을 담아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과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만 복음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하나님의 덕을 가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온전한 신앙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고후2:15).

     

    성도는 하나님과 같은 소리를 내어야 합니다(쉼포네오). 그러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고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갈5:25).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9:23). 날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길은 내 자아가 죽고 성령의 은혜로 사는 방법뿐입니다. 이렇게 복음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됩니다(딤후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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