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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는 성별된 사람이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6. 10. 9. 11:00

    창조절 6주, 교회창립9주년 감사예배(2016년 10월 9일)

    호세아 7장 8-12절

     

    성도는 성별된 사람이다.

     

     

    가. 성도는 성별된 사람이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에브라임은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8절).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신을 따르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입니다. 북 왕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이 여러 민족과 혼합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러 민족과 혼합되었다는 말은 영적인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즉 피가 섞였다기 보다는 이방 신과 이방 문화에 물들었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혼합되다’(발랄)는 ‘뒤섞이다, 퇴색되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의 모습은 사라지고 우상숭배와 세속문화에 젖어버린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세상과 동화된 자화상을 고발하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성별된 백성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라”이라고 명하셨습니다(레19:2). 여기서 ‘거룩’(카도쉬)은 ‘구별, 성별’을 뜻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중심은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는 소금과 빛으로써 세상과 구별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거룩을 추구하고, 성별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나.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에브라임은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8-9절).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하는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합니다. 본문에서 ‘혼합되다’(미완료 히필형)는 이방종교와 이방문화에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빠져 들어가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그러한 모습을 “뒤집지(하파크) 않은 전병과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여기서 ‘뒤집다’(수동태 분사형)는 ‘바꾸다, 변화되다’의 뜻입니다. 세속문화에 젖어든 이스라엘은 뒤집어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셨던 복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언제든지 화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주에서 돌이켜 복 받을 이스라엘이 되려면 세속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요구됩니다. 먹을 수 없는 전병은 쓸모없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9절에서는 세상에 영향력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무력함과 무지함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다 죽어가는데 우리 교회는 잘 모이고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 큰 교만입니다(10절).

     

    다. 주님을 끊임없이 앙망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10절).

     

    선지자는 세상 유혹에 넘어간 이스라엘을 ‘어리석은 비둘기’(deluded dove) 같다고 하였고, 그들은 참된 구원자를 모르고 애굽과 앗수르에게 살라달라고 애원한다고 했습니다(11절). 본문은 우상숭배와 세속문화에 빠진 이스라엘의 살 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살 길은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돌아오다’(슈브)는 ‘방향을 바꾸다’ 곧 ‘회개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꿩 잡는게 매다’는 식의 가치관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세상방식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예배 형식을 빌려 사람이 높임 받는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적극적으로 구해야 합니다(바카쉬). 돌아오고 구하는 행동을 한 마디로 ‘앙망하다’(카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앙망하다’는 ‘함께 묶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연합하면 하나님의 능력에도 당연히 묶여지게 됩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사40:31).

     

    라. 앙망하는 성도에게 구원이 있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12절).

     

    신앙생활에는 목적과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목적과 방향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시인은 한두 번 죄를 짓다보면 나중에는 죄와 웃으면서 타협하게 되고 결국 죄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시1:1). 가만히 있어도 잘 되는 법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후퇴하게 되고, 주님을 앙망하면 조금씩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다”고 늘 고백해야 합니다(시121:2). 우리의 구원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바른 길로 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날마다 아름답게 가꾸어주실 것입니다(고후5:17). 주님을 앙망하는 성도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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