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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님과 같이 행동하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6. 5. 15. 11:00

    성령강림절(2016년 5월 15일)

    갈라디아서 5장 22-26절

     

    성령님과 같이 행동하라.

     

     

    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절).

     

    본문은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라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권면이지만 명령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했습니다(엡5:18). 여기서 ‘받으라’(플레로오)는 ‘가득 채우라’는 뜻으로 명령형입니다.

     

    본문에서 성령 충만하여 나타나는 열매로 사랑(아가페), 기쁨, 평강, 오래 참음, 인자, 선함, 믿음, 온유, 자제력 등을 열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것을 금하는 법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율법이 사랑을 반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하였습니다(롬13:10). 율법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수단입니다. 성령 충만은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따라가게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성령 충만의 모습이고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이 문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25절).

     

    성령의 열매는 내가 맺고 안 맺고 선택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도는 성령의 열매가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앞에서 성령의 열매와 대조적인 육체의 일을 언급하였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19-21절). 이는 믿지 않는 자의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믿는다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현상을 말하며 이를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를 육신의 속한 자”라고 불렀습니다(고전3:1). 어린 아이의 믿음이란 생명력이 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이 능동적이고 큰 믿음으로 자라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게 되고 그런 상태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게 되고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21절).

     

    다. 성령님과 같이 행동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4-25절).

     

    육신의 소욕은 정욕과 탐심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믿는다 할지라도 성령 충만함이 없으면 육체의 일로 살다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경고하였습니다(갈3:3).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못 박았다’(스타우로오)는 과거형으로 쓰였습니다. 성도는 육체의 소욕에 대해 이미 죽은 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를 때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음을 깨닫고 죽은 믿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행할지라’(스토익케오)는 가정법이지만 권유형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NIV의 경우도 “우리가 성령으로 살기 때문에 성령과 보조를 맞추어 나갑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성도는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 우리의 생각과 말을 따르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길입니다. 본문에 ‘행하다’는 ‘규칙에 따라 질서 있게 걸어가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성령님의 지시, 인도를 따라 같이 행할 때 육체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라. 열매 맺는 자가 존귀하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절).

     

    25절과 26절은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욕심을 구하고, 자신의 영광을 목적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영광에 목숨을 걸면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게 되고, 자기 보다 잘난 사람은 시기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입니다(살전4:7). 성도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 거룩의 열매, 사랑의 열매 등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존귀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7:19).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신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은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인도하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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