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성령님의 양육을 받으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7. 6. 18. 11:00

    성령강림 후 2주(2017년 6월 18일)

    요한복음 14장 15-21절

     

    성령님의 양육을 받으라.

     

     

    가. 자녀는 성령님의 양육을 받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고아들(ορφανος)과 같이 버려두지(αφιημι)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올 것이다}(18절).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모 없는 고아처럼 제자들을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를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을 아버지께 간청하겠다고 하셨습니다(16절).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사랑이라는 새로운 방식 안에서 여전히 함께 하실 것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지금까지 보혜사 역할을 하셨는데 자신이 떠나면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가 제자들을 도울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보혜사’(παρακλητος)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εω)에서 온 말인데 ‘곁에서 돕다, 보호하다, 변호하다, 위로하다’ 등 여러 뜻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도 보혜사를 ‘Helper, Advocate, Comforter, Counselor, Intercessor, Strengthener’ 등 다양하게 번역하였습니다.

     

    보호자, 돕는 자, 양육자 등 이러한 보혜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부모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적 부모가 되어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계명’(εντολη)을 잘 지켜서 완전에 이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자녀 곁에서 믿음을 돋우시고 때로는 책망하시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양육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 고아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너희를 고아들(ορφανος)과 같이 버려두지(αφιημι)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올 것이다}(18절).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의 영적 고아 상태를 무척 걱정하셨습니다. 당시 고아와 과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특히 본문에서 고아는 돌봄 받지 못하는 자녀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고아는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양육 없이 사는 자녀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완전을 향하여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간절함으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부모로 모시고 양육을 받고 자라는 것은 은혜입니다. 성령님을 거부하고 고아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성령님이 생명의 일을 따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성령의 양육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령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불의의 몸일 뿐입니다(롬8:13).

     

    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20절).

     

    그러면 성령님의 양육을 받으며 영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보혜사 성령님과 인격적 연합을 이룰 것을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보혜사를 받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17절). 여기서 ‘받다’(λαμβανω)는 ‘영접하다, 모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과 인격적 연합을 이루는 길은 그분을 모시고자 하는 간절함과 모셔 드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의 영향력 아래 잠기는 것이고, 그럴 때 주님의 계명들은 더 이상 무거운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요일5:3).

     

    라. 성장하는 자녀가 사랑받는다.

    {나의 계명들(εντολη)을 붙들고(εχω) 지키고 있는(τηρεω)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εμφανιζω)}(21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신앙생활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모범을 보여주셨고 우리에게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성령 사역은 내주 사역과 능력 사역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주 사역은 성령 충만함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리고 능력 사역은 성령의 은사를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런데 내주 사역 없이 성령의 능력만 구하면 모래성이 무너지듯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격적으로 성령님과 연합하여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라야 주를 사랑하는 자니 그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로 보여주십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