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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페의 삶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08. 4. 27. 23:47

    부활절 여섯째주일

    아가페의 삶(요일 4:7-21)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지난 2주 동안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의 공유하는 속성을 닮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우리도 선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 우리가 닮아야 하는 것으로 “사랑”이라는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1. 서로 사랑하라.

    오늘 본문 11절에서 사도 요한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NIV, AmB) 여기서 “마땅하도다”라는 뜻의 헬라어 “opheilo”는 의무, 당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히”해야 할 일이란 말씀입니다.

     

    내 기분으로, 감정으로 사랑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기분 나쁘니까 미워하고, 저 사람은 돈 많고 잘 생겼으니까 사랑한다는 논리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앞서 10절에서 말씀하는 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요, 그 사랑의 내용인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데, 여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고, 무슨 토론이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나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이유 앞에 그 어떤 변명도 자존심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자”는데, 우리는 이것을 그렇게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살다보면, 부부끼리, 형제자매끼리, 동료들끼리 다툴 때도 있고, 기분 나쁠 때도 있겠지요. 그래도 먼저 다가가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사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살면서, “죽어도 나는 용서 못해, 내가 먼저 화해 못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요일 4:20).

     

    2. 사랑이란?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로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네 개가 있습니다.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가 그것입니다. 이 중에 성경에는 세 가지만 나옵니다.

     

    먼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헬라어에는 “에로스”라는 단어가 있는데, 에로스란 본능적 사랑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는 정(情)이라는 의미의 “스토르게”가 있습니다. “초코파이의 정” 아시죠? 디모데후서 3장 3절에 있는 말씀, “말세의 현상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무정하다”라고 할 때 쓰인 “정”입니다. “정”은 “스토르게”인데 “무정”하다는 단어는 앞의 “a”가 붙어 “astorgos”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로마서 1장 31절에 “하나님을 떠난 자,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무정한 자”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 “인정(人情) 없음”으로 쓰인 “무정”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세 번째는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벗된”으로 쓰인 “필리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주고받는 사랑, 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외모로 여자를 보고, 돈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적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고받으므로 유지되는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친구사이건, 선후배 사이건, 부부사이건, 필리아는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사랑은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가 아닌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바로 이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조건 없이 내주는 사랑을 말합니다.

     

    3. 하나님의 아가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아가페는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무슨 특별한 일을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도 몰라보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목적대로 살지도 않고, 온갖 죄를 지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아가페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주 예수님은 한 가지 조건적인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아가파오”했으니, 너희도 서로 “아가파오” 하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토라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 엎습니다. 언듯보면 같은 말 같지만 이것은 완전히 다른 말씀입니다.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나” 기준에서 “예수님” 기준으로 바뀐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가페”는 “목숨까지도 버리는”(요 15:13) “메이조나 아가펜”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요일 4:10)로 자신의 목숨조차 버리셨습니다. 예수님 기준의 아가페를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제자라면, “메이조나 아가펜”(greater love)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아가페의 본질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아가페, 즉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아가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아가페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장이 고린도전서 13장이라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으로 곡을 만든 찬양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아가페”의 본질을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묵상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아가페란 무엇이다”라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가페는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먼저 온유(크레스튜에타이)란 관심입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어떤 종업원도 먼저 인사를 하거나, 주문하라는 말도 없으면 손님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어떤 사람이 교회에 갔더니, 자기에게 아무도 말도 안걸고, 식사하고 가라는 말도 없다고 다시는 그 교회 안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지만, 아직 신앙심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왜냐면 아가페는 관심인데, 그 교회는 아가페가 없는 교회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의 의미인 온유는 상대방을 관심하는 마음이요, 따뜻한 배려입니다. 온유한 마음에서 겸손이 나오고, 친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 아가페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마음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미치는 득실을 고려하는 마음은 아가페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온유한 마음의 아가페에서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고 나누는 성령님의 역사로 공동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가페는 용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는 “모든 것을 참으며”라고 나오는 여기서 “참으며”라는 말은 “덮어주며”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테고”라는 말은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고 조용히 덮어주는 것을 말합니다(cover with silence). 창세기 9장에서 포도주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아버지 노아를 아들 셈과 야벳이 뒤로 들어가 덮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가페는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알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제일 못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용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용서가 없으니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용서하며 사는 삶이 아가페입니다. 잠언에 “사랑이 모든 허물을 덮는다”(잠 10:12) 하였습니다. 용서하지 못함은 아가페가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절을 보면, 집사의 자격에 “모함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고 들추는 사람은 집사의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살인자도, 외도한 남편도 아가페가 있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가페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아가페는 모든 것을 견딘다”고 하였습니다. 견딘다(휘포메네이)는 뜻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아내를 아가페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가페하는 것은 어떤 고난이 와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리더의 역할을 맡는 사람은 오래참음(마크로수메이)이 필요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참으며”는 “아넥시카코스”(patient)라는 말인데, 앞의 “데이”(must)가 붙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참으라는 뜻이 됩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도 맞서 싸우지 말고 “반드시” 참고 견디고 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참고 견디는 일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가페는 희생입니다.

     

    5. 아가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2)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이 말씀하신 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하나님이 아가페이신 것처럼, 우리도 아가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 용서하는 삶,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신 그 아가페를 생각하면, 우리가 관심 갖지 못 할 대상이 없고, 용서 하지 못 할 대상이 없고, 참지 못 할 대상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가페의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땅히 행할 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출처: 동산교회 이관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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