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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자.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 2. 02:38

    송구영신예배[20121231]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자(전 7:1~4)

     

     

    사막교부 마카리우스는 ‘언제나 내일 죽을 것처럼 살되, 앞으로도 살 날이 많은 것처럼 제 몸을 돌보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가치를 일깨어주는 교훈입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귀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전도서 1장 2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자는 무엇이 그렇게 헛되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모든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 자체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헛됨’이라는 히브리어 ‘헤벨’은 ‘숨, 증기’라는 의미로 인간 실존의 무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인생의 결말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은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 자체가 ‘헛되다, 덧없다’는 것이지, 전도서의 주제가 비관주의, 염세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설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유한한 세상살이에서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하는 ‘삶의 지혜(호크마)’를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한 사람만 인생이 헛되다고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후회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담의 교만을 보라고 가르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실수를 거울로 삼으라고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서는 솔로몬의 후회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오늘 전도서의 본문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인생으로 살 수 있는 지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전도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전 7:1) 여기서 ‘이름’과 ‘기름’은 히브리어로 ‘쉠’과 ‘쉐멘’으로 ‘좋은 이름’을 남기는 인생이 되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언어유희입니다.

     

    날마다 좋은 음식을 먹고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빛을 가졌어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하나님은 얼굴빛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인생의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그 사람이 ‘좋은 이름’을 남겼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로 평가하십니다. 그렇다면 ‘좋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그 사람의 지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업적을 쌓았고,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느냐를 보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냐 즉 그 사람의 존재됨으로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아무리 좋은 이름을 물려받아도 이름 자체가 그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부모가 지어준 껍데기 이름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알맹이 이름을 보십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김선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도 늘 도둑질만 하며 살았으면 그 사람의 이름은 ‘도둑놈’입니다. ‘김정직’이라고 사람들이 불러줘도 눈만 뜨면 거짓말 하며 산 사람은 ‘사기꾼’일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이 함축하는 바는 심오합니다. ‘야곱’은 ‘술수부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 인생이 말 그대로 술수부리며 살았으면 ‘사기꾼’으로 남을 뻔 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새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며 ‘아름다운 이름’으로 후손에게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좋은 이름,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본문의 다음 구절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4절도 같은 뜻의 반복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거나 결혼을 하게 되는 일은 분명 기쁘고 축하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잔치 자리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합니다. 초상집에 가야 철학자가 되는 법입니다.

     

    잔치집에서는 서로가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인생의 결말을 논하거나 진정어린 충고를 해주지도 않게 됩니다. 하지만 초상집에 가면 인생의 끝을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일과 잔치집에 가는 일은 지혜자와 우매자의 행동을 대조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3절에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 7:3)

     

    인생에서 웃을 일이 많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잔치 자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두 가지의 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 정욕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눅 12:17) 이런 세상 근심은 뼈를 썩게 할 뿐이고(잠 14:30) 그런 근심으로는 천국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근심은 회개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고후 7:10) 시편 기자도 인생의 유한함을 아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인생의 끝을 아는 사람만이 방황하거나 썩을 일에 목숨 걸지 않고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알고 지혜롭게 삽니다.

     

    솔로몬은 인생 말년에 누릴 것을 다 누려보았지만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때론 자연의 생명력 보다 못함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전 1:4)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이 땅에 사는 동안의 의미라면 그런 헛된 수고에 목숨 걸지 말고 진정 가치 있는 수고에 의미를 두라는 것이 전도서의 호소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진리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결론입니다.(전 12:13)

     

    인생 끝에 흘리는 후회의 눈물은 눈물일 뿐입니다. 후회의 눈물은 하나님에게 나를 감추는 꼴이 됩니다. 후회의 눈물은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삶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후회만 하는 인생은 궁극 영혼이 마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참회의 눈물은 다릅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돌이키고 죽은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통회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비애의 눈물에는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은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참회의 눈물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죽음의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이 단 한번 뿐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이런 '죽음 성찰'이 우리의 근본 소명을 일깨웁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말년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일깨우고, 사랑과 빛의 흔적으로 남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지혜를 깨달아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동시에 오늘 하루를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며 나 자신을 '좋은 나무'로 가꾸는 일에 전심전력하며 살아가길 간절히 원합니다.(마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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