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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리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24. 4. 21. 16:00

    The Apostle Creed

    부활절 42024. 04. 21.

    누가복음 1025~37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리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 뜻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탈북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신 분이 35천명 정도라고 합니다. 북한 인구를 감안하면 아직 소수입니다. 저는 탈북해서 우리나라에 정착하신 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기를 기도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또한 지금도 탈북 과정 중에 있는 분들이 안전하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의 현실이 탈북하신 분들의 증언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중 유튜버로도 인기있는 정유나 씨가 간증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Ignorance is bliss.” “모르는게 약이다.” 정유나 씨는 북한에서 친구 소개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는 한국 사회를 알게 되었고, 북한이 말하는 (그들 말로) 남조선에 대한 교육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번 두번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사회를 알게 되니까 아는 것을 표정으로 감추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북한의 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북한은 거대한 감옥과 같다고 합니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진리에 눈과 귀가 가려진 상태가 곧 감옥입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되고, 진리를 모르면 감옥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감옥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옥을 벗어나 진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과연 나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25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당신은 어떻게 해석하느냐”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이에 율법교사가 대답하는 말이 놀랍습니다. 한 마디로 율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쳐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고(22:40) 후에 바울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5:14) 그런데 이 율법교사도 이 진리를 말했으니 이 사람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아직 정경화되기 이전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쳐준 율법교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게 말한 겁니다. 구약의 율법을 다 세어보면 613개 계명이라고 합니다. 모든 율법 그 기저에 흐르는 법 정신. 이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인 것을 간파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라고 하셨는데, 감정을 이입해서 표현해 보면 당신이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놀랍다.”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율법교사의 연이은 질문과 예수님의 예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핵심은 율법교사의 두 번째 질문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화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니까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유대인 한 사람이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그냥 지나간게 아닙니다. 피하여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레위인도 피하여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상종하지도 않는 사마리아인은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서손수 치료해주고 돌보아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나간 사람은 셋이었지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 사람을 피하여 지나친 사람이었나 아니면 그 사람을 보고 도와준 사람이었나.

     

    개혁주의 주석들은 오직 믿음이라는 감옥에 갇혀 이 비유를 알레고리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우리 죄인들로 보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인의 구원자라는 해석입니다. 이 본문은 그걸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좀 더 구체화해봅시다. 본문의 핵심은 율법교사의 두 번째 질문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인가?”에 있고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면서 누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겠는가 라는 아주 쉬운 질문 (주일학교 아이들도 다 알아맞출 수 있는 질문에) 예수님의 화룡점정 가르침. 바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다고 하셨나요? 아니지요. 마태복음 233절을 찾아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바르게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르게 알고있다고 해도 행하지 않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혹시 율법교사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압니다. 무엇이 선인지 압니다. 무엇이 옳은지 압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알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이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πλησίον으로 가까운(near)이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가?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치료하고 돌보아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피하여 도망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가서도와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아시지요? 나사로가 어디 살았습니까? 어떤 부잣집 대문 앞 그러니까 이 부자의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죽어서도 정신 못차리고 나사로를 내 이웃이 아닌 여전히 내 종 취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어 내게 물 한 방울만 축이게 하소서”(16:24)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시험하는 질문조차 지혜롭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Who is my neighbor?”(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How can I be a good neighbor?” “나는 어떻게 해야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는지로 바꾸어 가르쳐주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언제까지 우리는 말하지 않는 진리로 숨겨 놓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내가 선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훈련 속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믿음, , 자비, 충성, 인내, 사랑 이런 훈련과 함께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랑 훈련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랑의 훈련은 이 땅에서 하는 것이고 천국은 사랑이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난센스입니다. 내가 선한사마리아인 같이 하나님의 긍휼하신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는 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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