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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7. 21. 18:16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주일[20110717]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창 22:11-14)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을 누가는 기록했지만(행 9장) 진작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들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맥시 던남은 말하길 “우리는 주님과의 체험에 있어서 주변의 외적 환경과 체험의 세부적 내용을 상세히 이야기 하는데 집중하므로 그 체험 사건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지적합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하나님 체험의 내적 의미를 표현하고 찬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말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순종도 중요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체험도 중요하지만 본문이 말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아브라함이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1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리아 산까지 이릅니다. 번제 드릴 준비를 다하고 아들 이삭의 목을 베려는 그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급박하게 천사가 제지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한다고 하면서 22장 1절은 시작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테스트치고는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 10절, 11절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넘어 섬뜩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여하튼 결론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본문 14절의 고백으로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리아 산’ 하면 ‘여호와 이레’가 떠오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준비된다’는 말은 원어의 의미로 ‘보게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리아 산’ 하면 ‘여호아의 산에서 보게되리라’는 아브라함의 체험이 떠오르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하나님 이야기가 만들어 질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치외법권지대인 지하 무덤동굴 카타콤에 들어갔다는 역사를 기억합니다. 그들이 암호로 사용한 표시가 바로 ‘물고기’를 뜻하는 ‘익투스’입니다. 그런데 ‘익투스’의 다섯 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헬라어 첫 글자를 합친 단어입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번제할 어린양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의미를 8절과 13절(대신하여), 14절에서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숫양’을 친히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숫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의 히브리어 첫 글자 세 자를 모은 단어입니다. 이것을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숫양'만 봐도 이삭의 번제를 대신하여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이 떠오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언제 ‘여호와 이레’를 체험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22장 4절을 한 번 봅니다. “길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공동번역)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길을 떠나고 삼일 만에 모리아 산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말없이 삼일 길을 걸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그제서야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삼일 간의 정적, 성경은 삼일 길의 여정에 인간의 언어를 침묵시킵니다. 아브라함이 삼일 길 후 비로소 저 멀리 하나님이 말씀하신 산을 바라보고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5절)


    사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을 했지만 이때까지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산에 숫양을 예비하셨는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언제 하나님을 만났고, 언제 하나님이 예비하신 숫양을 발견했습니까? 바로 칼을 들고 진짜로 아들을 도살하려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아브라함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경험합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


    우리는 여호와의 산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1장 6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는 믿음을 가지면 “믿음 결국 곧 영혼의 구원”(벧전 1:9)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까지 이르러서야 친히 하나님이 준비하신 희생양을 체험하는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오르기까지 포기하지 믿음 곧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사도 바울이 강조하듯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항상 깨어있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길은 나를 위해 누가 만들어주거나, 누가 나 대신 가주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신앙의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처음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약속하신 그곳까지 순종하며 가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아브라함의 신앙에는 자식조차 내 소유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음을 봅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12절)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25년만에 얻은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행동으로 아끼지 아니하고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고백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의 소원을 들어주시고자 했습니다. 이 때 솔로몬은 또 한번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는데, 바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분별의 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소유를 내 것이라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 쓰면 구하지 않은 더 좋은 것도 맡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아브라함이 삼일 길을 걷고 올랐던 모리아 산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가라고 하시는 모리아 산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모리아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도 신앙의 길을 계속 걷기를 포기하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와의 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까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내 목숨조차 아끼지 아니하며 믿음으로 오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면 분명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가장 좋은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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