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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성소를 계속 밝혀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2. 11. 10. 02:22

     

    성령강림절 후 스물셋째 주일[20121104]

     

    영혼의 성소를 계속 밝혀라(레 24:1~4)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욥처럼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하는 일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하루 아침에 고난에 빠지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는 일입니다. 나에게서 더 이상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의 신분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는 죄를 저질렀지만 나단의 책망에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시편 51편에 다윗이 회개하는 기도가 나오는데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시 51:11) 다윗은 영적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에게 떠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알았습니다.

     

    반면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었습니다. 사무엘로부터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고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삼상 10:6)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은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5:11)

     

    하나님을 높이지 아니하고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왕으로 타락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말합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

     

    아무리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저주일 뿐입니다.(호 9:12) 하지만 비록 환란과 고통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은 축복의 과정입니다.

     

    본문의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성막의 의미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호렙 산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물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눈 여겨 보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이 430년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기간 내 백성이라 부르게 될 이스라엘을 애굽에 머물도록 하였는지 쉽게 납득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있는 동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드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애굽의 생활과 관습에 거의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애굽의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 자손을 강제 노역을 시키고 학대를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은 그들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입니다.(출 3: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예배드리는 제사장 나라로 구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고자 하시는 목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출 19:6) 즉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으로 세워 그 빛을 보고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셔서 사십 주야를 함께 하셨습니다.(출 24:18) 이때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계시 받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백성 중에 거할 성소를 나를 위하여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막에 대한 의미가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성막’이라는 단어 ‘미쉬칸’은 ‘거처한다’는 뜻입니다. 성막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신다는, 보여지는 장소로서의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 광야 생활 가운데 마흔두 번 이사하면서 그때마다 성막도 함께 진행하였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서 성막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였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어느 정도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성소 안에 등잔불을 계속 켜 두어라’는 본문의 메시지를 생각해 봅니다.

     

    성막 안에 있는 성소는 네 겹으로 덮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덮개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덮개이고, 두 번째 덮개는 염소 털로 짠 덮개, 세 번째는 숫양 가죽으로 만든 덮개 그리고 네 번째는 물개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따라서 성소는 외부로부터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성소 안에 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소 안에는 등잔대와 떡상, 분향단이 있는데 등잔대의 불이 환하게 비추이면 그 앞의 진설병이 놓인 떡상과 휘장 앞 분향단도 밝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소 안의 등잔불을 계속 켜 두어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성소 안의 불이 잠시도 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등잔불이 계속 밝게 빛나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한 조건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여기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봅니다.

     

    등잔불을 계속 켜기 위해서는 올리브에서 짠 순결한 기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해서 모세에게 가져와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 중 다섯 처녀만 기름을 준비하며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다섯 처녀만 신랑을 맞으러 가며 기름을 준비했다는 이 비유는 ‘주님 오심을 준비하고 항상 깨어있으라’고 하는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혼의 성소에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 기도하고 깨어있는 영적 상태가 요구됩니다. 이것이 영적인 의미의 기름입니다. 특별히 ‘순결한’ 기름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순결한’ 기름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과 ‘의도의 순수성’을 의미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이 우리 영혼의 등불을 계속해서 빛나게 할 것입니다.

     

    또한 성소의 등잔불을 항상 밝히기 위해서는 등잔과 불을 밤낮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아론에게 맡기셨습니다. 등잔불을 오래 켜두면 심지가 그을리고 불똥 찌꺼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불이 어두어지게 됩니다.

     

    성소의 등잔불이 계속 환하게 타오르기 위해 불을 정리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듯이 우리 영혼의 등불을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불순물을 정리하고 제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등잔불이 타면 탈수록 찌꺼기들이 생기듯이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안일함과 타성에 젖기 쉽기 때문입니다.

     

    광야 시대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솔로몬 때에는 성전이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9:3)

     

    그러나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백성들은 더 이상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 임재의 장소가 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여기에 여호와의 성전이 있다,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다’고 하는 거짓말을 일삼습니다.(렘 7:4)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성전은 더 이상 ‘여호와의 성전’이 아닙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사람들이 세운 집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통해 새로운 성전을 짓고 계시며(마 16:18), 하나님의 눈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향해 있습니다.(요 4:24)

     

    만유의 하나님은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살아있는 예배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요 4:23) 이제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3:16)

     

    사도 요한은 영안이 열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아름다운 보석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다고 하면서 그 성전은 바로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신다고 말합니다.(계 21:22) 그리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신다고 말합니다.(계 21:23)

     

    사도 바울은 신자의 몸이 곧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6:19)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가 곧 성소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의 등불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면 이것이 곧 영혼의 성소를 밝히는 일이 되고, 하나님 임재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영혼의 성소를 계속해서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합니다.(마 5:14)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결한 기름을 준비하며, 영혼의 불순물을 날마다 정리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예배자로 빛나길 원합니다.(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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