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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어두운 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8. 9. 18:41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20010731]

    영혼의 어두운 밤(창 15:1-17)


    지난 주,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 오늘의 방주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멸망한 것은 살인죄, 간음죄, 도둑질로 심판 받은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만 관심한 것 때문입니다.(마 24:38) 다시 말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육적인 인생에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와 아버지 노아에게 순종한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후 노아는 포도 농사를 시작하였는데,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적극적으로 덮지 않았고 이 사실은 안 노아는 함의 자손을 저주합니다.(창 9:25)


    반면 아버지의 허물을 덮은 셈과 야벳은 노아에게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후 소개되는 셈의 족보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 11장 10절 이하입니다. 셈은 홍수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에벨은 벨렉을, 벨렉은 르우를, 르우는 스룩을, 스룩은 나홀을, 나홀은 데라를, 그리고 26절에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라고 말합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달 신을 만들고 이방신을 섬겼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노아는 셈을 축복하였는데, 셈 이후 아브람까지 10대가 흐르는 동안 셈의 후손인 데라 세대에 와서는 하나님을 떠난 가문으로 다시 타락하고만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27절은 아무리 조상이 축복 받았다고 할지라도 축복은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데라의 족보라고 하는 창세기 11장 27절 이하를 보면 실제로는 족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떠난 데라 집안의 비참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며느리는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다시 무너뜨리는 인간의 결과입니다. 홍수 심판 당시 부패한 모든 인간을 멸하셨을 때에도 영의 사람으로 살고(창 6:9)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 노아에게는(창 6:22) 은혜를 베푸셨는데(창 6:8), 그 후손은 심판 때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육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창세기 12장 1절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신 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며, 저주의 가문에 구원자로 문을 두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데라 가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와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세상의 문명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위대한 구원의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람은 문명을 뒤로 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합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존재를 아브람은 인정하고,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한 가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 12:2, 새번역)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굳게 믿었을 뿐 아니라 그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미지의 땅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나타난 인생의 주인을 향해 이름을 부르며 벧엘 동쪽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에 이릅니다.(창 12:8)


    본문의 상황은 그로부터 다시 수년이 지난 때입니다. 아브람이 굳게 믿었던 약속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브람을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기는커녕 대를 이을 아들 소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 없이 살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찾아오셨듯이, 창세기 15장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아브람은 그날도 대를 이을 자식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점점 늙어만 가는데, 아직 아들이 안생기니 후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갑자기 나타나셔서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의 약속이 흐려지고, 대를 이을 상속자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가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아브람아, 내가 너의 인생의 의미라는 사실을 잊었느냐? 왜 의심하고 걱정 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아브람에게 제대로 와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나타나시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짜고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면서 자식은 안주시냐고 되묻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창 15:1-2)


    아브람이 하나님이 나타나시자마자 이런 말을 할 정도면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이 가득 차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아브람은 다시금 하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창 15:6) 이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을 주겠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하나님께 자신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여쭙습니다.(창 15:8)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희생 제물을 준비하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창 15:9) 아브람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다.”(창 15:10)


    오늘 본문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구절은 바로 12절입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창 15:12) 공동번역에는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했다”는 표현 대신 “아브람이 신비경에 빠져들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아브람의 영적 상황이 그를 “깊은 어둠과 공포로 짓누르게”(새번역) 하였습니다.


    지금 아브람의 심정은 거듭되는 약속과 의심, 하나님 임재와 어두움의 반복 속에 다시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깊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로 삼 년 된 암소와 암염소,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희생 제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암소와 암염소, 숫양은 반을 가르고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11절에 솔개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사체를 뜯어먹으러 내려 올 때 아브람이 쫓아버렸다고 했는데, 그날 아브람에게 임한 밤은 솔개를 쫓다 지친 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희생 제물을 준비하라고만 하셨지 그 다음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 밤이란 아브람에게는 그렇게 솔개를 쫓다 지친 피곤한 밤이었습니다. 또한 그 밤은 아브람에게 무언지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이 몸속으로 파고든 밤이었습니다. 고독의 밤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한 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브람이 맞이했던 밤과 같은 인생의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 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대로 주일도 지키고, 십일조도 하지만 내 영혼은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내듯 나름대로 가증하고 부정한 것을(레 11:13) 멀리하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내 영혼은 지치기만 하고, 오히려 깊은 어두움과 두려움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어두움이 임했다고 하나님이 부재하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곧 임하시니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흑암이 임하고 공포가 짓누를 때가 있습니까? 앞에는 홍해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고 있습니까?(출 14:10) 마실 물이 없는 마라에 내가 이르렀습니까?(출 15:23) 여리고 성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습니까?(수 6:1)


    어두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은 곧 임하십니다.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하나님은 곧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아브람의 영혼에 어두움이 깊고, 두렵고 떨릴 때 아브람은 영적으로 깨어있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너는 똑똑히 알아두어라.”(공동번역) 하나님은 앞으로 있을 아브람의 후손들의 일들을 말씀하시고, 떨고 있는 아브람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 편에서의 서약을 행하십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 제물 사이로 지나갔다.”(창 15:17)


    이 횃불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반드시 행하실 것이라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우리 영혼이 어두움이 짙다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흑암을 밝히십니다.(시 18:28)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이지 하나님에게는 흑암과 빛이 다 같을 뿐입니다.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시 139:12)


    인생의 외적 환경을 보지 말고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밤이 깊을수록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하나님이 곧 임재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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