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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4. 7. 27. 22:30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2014년 7월 27일)

    창세기 4장 1-8절

     

    예배 성공이 인생 성공입니다.

     

     

    창세기 4장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둘 다 직업을 가졌고, 둘 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 그 가운데서 예배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가. 우리의 삶을 평가받을 날이 옵니다.

    “아담이... 가인을 낳고...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1-4절).

     

    본문에서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하였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시간의 끝에 이르렀으니’라는 뜻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 모두 제사 한 번 드리고 하나님의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인도 농사지으며 제사 드리는 삶을 살았고, 아벨도 목축하면서 제사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냉정한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농사하다’라는 동사는 완료형으로 쓰였는데, 가인이 제물을 ‘드렸다’는 동사는 미완료형입니다.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상태를 말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일에는 잘했는데, 예배드리는 일에는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아벨이 ‘목축했다’는 미완료형으로 쓰였는데, 제사 ‘드렸다’에서는 완료형이 쓰였습니다. 아벨은 일에서는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예배 한두 번 드린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예배가 쌓여서 우리의 삶이 형성되고, 하나님의 때에 평가받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삶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마19:30). 늦게 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아직까지 맡겨진 일에 부족하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예배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3-5절).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하찮게 여겨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귀하게 여겨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삶에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했으나 제사 드리는 일에는 소홀하였습니다. 가인에게서 이러한 삶이 계속되자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벨은 본의 아니게 짧은 인생이었지만 예배자로서 바로 서려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목축일은 부족해도 예배는 성실하게 드렸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맏물을 드리고, 최상의 것을 드리는 정성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벨의 마음을 생각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삶에서 예배는 근본입니다. 근본에 충실할 때 우리가 생계를 위해 하는 일도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받으셨다’는 하나님이 주의 깊게 보시고 인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인생을 주의 깊게 살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좋은 예배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인생은 망합니다.

    “...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5-8절).

     

    어느 날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예배자는 자신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지, 받지 않으시는지 안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명하신 성막을 완성하였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출40:35). 이것을 쉬카이나(shekinah)라고 하는데, 아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아마도 가인에게 이를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자 괜히 동생이 미워지고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한두 번 해본 것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인이 한 번 예배드리고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자 분노한 것이 아닙니다. 늘 드리는 예배였지만 형식으로 드리고, 통상적으로 드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다 보면 그의 삶도 변화가 없고 나중에는 죄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예배를 정성껏 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습니다. 예배드리고 뒤돌아 서서는 다시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삶이 아니면 항상 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다 보면 가인처럼 망하는 인생이 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라. 예배에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이끕니다.

    “...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7절).

     

    본문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예배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쉽게 죄 짓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사탄이 우리가 죄 짓도록 늘 대기 상태로 있다는 표현입니다. 예배를 잘 드려도, 건성으로 드려도 죄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예배 잘 드린다고 죄의 유혹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배를 잘 드리면 죄를 이길 힘을 얻습니다.

     

    예배를 대충 드리고, 마지못해 드리면 언젠가 죄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가인의 길이 그러했습니다(유11). 예배 한두 번으로 인생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질 않습니다. 예수님도 알곡과 가라지 비유로 이런 현상을 설교하셨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뽑겠다고 하자 주인은 추수 때까지 그냥 놔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마13:30).

     

    하나님은 신실함과 진심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정성으로 드리는 일이 쌓이면 어느덧 알곡으로 변해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그 인생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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