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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12. 20. 08:41

    대강절 셋째 주일(2013년 12월 15일)

    이사야 53장 1-3절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올해의 시간도 어김없이 12월 25일의 성탄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벌써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강절기에 우리는 주님 오심의 의미를 되새기며 깨어있는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종의 노래입니다. 이 말씀은 사순절 기간에도 많이 읽혀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심이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대강절에 다시금 기억한다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고난의 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1절).

    1절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사야는 고난의 종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을 통해 아무리 좋은 소식을 전해도 들을 귀가 닫힌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해야 할 우선순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방의 빛으로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날에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고 온갖 죄를 저질렀습니다.

     

    본문이 속한 네 번째 종의 노래는 52장 13절부터 시작됩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13, 15절)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하였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날의 모든 죄악에서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인 선행과 공의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약속을 믿지않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에 관심하지 않고, 자기 귀를 즐겁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찾아 들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 제대로 듣지를 못하면 바르게 준비할 수 없습니다(2절).

    2절 말씀을 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여기서 고난의 종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난의 종의 모습은 단순한 외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의 형편이나 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절은 고난의 종이 어떠한 사명을 갖고 왔는지를 알려주려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종은 자기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고난의 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신앙생활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에 엉뚱한 메시아를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됩니다. 제대로 듣지 않고 살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고 메시아가 오시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받고 싶은 메시지만 받고 살기 때문에 십자가는 주님이 대신 지시고 나는 거저 구원 받겠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2-3절).

    고난의 종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볼 품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3절에서처럼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배척할 정도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병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대강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도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고난의 종이신 예수님도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신 곳도 궁궐이 아닌 외양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마8:20).

     

    예수님의 삶을 보면 그분은 고난의 종의 길을 걸어가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이름 없이, 영예 없이 일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을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메시아 소식을 제대로 듣고, 바른 길을 준비하는 구원받을 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라. 고난의 종이 가는 길은 힘들어도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12절).

    대체신학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53장에서 노래하는 고난의 종을 무조건 예수님이라고 해석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난의 종이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고난의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온전하고 훌륭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고난의 종의 모습으로 살아야 됩니다.

     

    대강절기에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올바른 자세는 고난의 종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의 종으로 살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이 땅에 낮은 자리, 섬김의 자리에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고난의 종으로 살면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의 종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분명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길을 인정하시고 반드시 존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종이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고, 선을 행한 것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종을 존귀하여 세우시고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의 종에게 주시는 하늘의 큰 상을 기억하고 고난의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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