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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4. 5. 05:00

    부활절(2015년 4월 5일)

    고린도전서 15장 42-49절

     

    예수님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가.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42-44절).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우리도 경험하게 될 부활의 신비를 소망하는 부활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성도들도 입게 될 부활의 영광을 선포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씨와 형체에 대한 비유로 부활의 신비를 설명하였습니다. 뿌리는 것은 씨고 나중에는 씨에 따른 형체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즉 사과씨를 심으면 사과가 열리고, 대추씨를 뿌리면 대추나무로 자라는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에서는 씨와 형체 관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연속성 면에서 보면 사과씨와 사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부활도 이 같은 점이 있습니다.

     

    몸은 죽고 나면 썩는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고, 약한 것이지만 성도는 죽음 이후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죽음 이후 부활이란 형체는 다르지만 정체성은 변함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고 부활의 몸으로 변하지만 서로가 누군지 다 알아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부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 육의 몸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48절).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한번 죽는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든 믿지 않든 죽음 이후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요5:29).

     

    그런데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부활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죽고 나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죽고 나면 다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잘못 믿었던 자들은 죽음 이후 영의 몸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본문에서 ‘흙에 속한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흙에 속한 사람에게는 부활 소망이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몸의 소망을 두고 살면 죽음과 함께 심판의 부활에 이르게 됩니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의 몸에는 어떠한 소망도 없습니다(창3:19).

     

    다. 예수님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45-48절).

     

    아담은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생령이 되었습니다(수동태). 우리 모두도 아담의 후손으로 하나님이 호흡을 주셨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육의 몸은 끝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에 속한 자’입니다. 본문은 우리도 흙에 속한 자로 태어났으나 신령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본문에서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능동태).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시며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요11:25). 예수님은 생명이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에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부활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담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흙에 속한 자와 같이 살면 생명의 부활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자와 같이 살면 하늘에 속한 자와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에게 속해있으면 예수님처럼 영광스런 부활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라. 예수님을 따르면 영광의 부활을 합니다.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자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48-49절).

     

    예수님은 친히 부활의 몸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 같은 영광의 부활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흙에 속한 자들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다”하였습니다. 이는 육의 몸에 소망을 두고 살다 망하지 말고 생명의 부활에 소망을 두고 하늘에 속한 이 곧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죽음 이후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태어났지만 마지막 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는 영광의 부활을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이고 성도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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