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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1. 7. 7. 13:17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20110703]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마 5:17-20)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은 그 내용이 너무나 심오하여 문자 배후에 있는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고후 4:4)고 했지만, 믿는 자들 역시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말씀을 깨달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고후 11:4) 따라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는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감으로 기록되었기”(고후 3:17) 때문에 진리의 영(요 14:17), 계시의 영(엡 1:17)이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시간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의 가르침도 깨닫고 함께 은혜 받길 원합니다.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의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핵심 단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 ‘천국(하나님의 나라)’, ‘율법’, ‘의’, ‘제자’ 등입니다.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이런 단어들을 먼저 이해하면 마태복음이 결국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이전에 예수님 탄생과 세례 받으심, 시험 받으시는 사건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4장의 마지막은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5장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은 제자의 도를 가르치시는데 5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는 큰 위임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제자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자의 도가 곧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천국의 삶을 실현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제자도와 천국 복음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신 메시지가 마태복음 4장 17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여기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의 삶에 다가와 있다”(God's kingdom is here; 더 메시지)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세상 방식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회개’는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냐 영생의 삶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하는 요청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임한 천국의 영역을 삶으로 누리기 위해 먼저 이 세상에서 가졌던 시각과 사고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초청하신 새로운 삶으로 들어오는 시작입니다. 우리 자신이 만약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상황(눅 10:30)이었다고 한다면, 생명을 구해준 사람에게 왜 구해주었냐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처럼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다 죽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살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학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 곧 “회개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입문은 세상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천국의 삶의 방식을 취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을 5장부터 하나씩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온 목적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본문은 천국의 삶을 누리는 일과 관련하여 율법과 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밝히는 말씀이 분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결코 부정적이거나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본래적 의미를 중요시 하셨고 그것은 본문 다음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등의 계명에 대해 본래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잘 가르쳐 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하며 율법의 기능이 선을 행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의 기능에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5장 아니 나아가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천국 복음이라는 메시지의 핵심을 간파하는 아주 중요한 키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본론입니다. 그러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는 예수님 가르침의 의도가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선함을 향하지만 율법은 결국 우리의 행동을 다스립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롬 3:20), 초등교사의 기능을 하고(갈 4:24), 거룩하게 살도록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없다고 말씀합니다.(롬 3:20)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본래적 의미와 기능을 정확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런 행위로는 의를 결코 소유할 수 없다고 지적해 주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율법은 행위의 법이고, 의는 마음의 법이라는 해석을 내놓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율법은 궁극적으로 행동을 다스리기 때문에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불의를 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마음의 법이 있어야 율법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 관계가 깨어지고, 가정이 분열되고, 나라가 무너진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율법만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율법과 함께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애 3:22, 슥 7:9)을 이야기합니다. 긍휼 없는 재판은 온전한 재판이 될 수 없으며, 자비 없는 정의는 온전한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복음인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의를 얻으려 했으니 문제는 문제를 낳는 결과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본문에 이어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십계명 제6계명을 예로 드십니다. 살인은 흉기로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분노를 발하고, 모욕하는 자도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문자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그 이면의 의도는 결국 살인 행위가 행위 이전에 미움과 분노라는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라는 십계명 제7계명을 예로 말씀하십니다. 간음 행위 이전에 음욕을 품는 마음의 문제에서 예수님은 그 원인을 찾으십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네 오른 눈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말씀하신 근본 의도는 육체의 일부가 없어도 지옥 가는 것보다 천국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그런 문자적인 뜻이 아니라 육체의 일부를 제거해서라도 계명을 지키는 행위는 근본 방법이 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근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않는 율법 모두 행위 자체에 목표를 둘 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정욕은 또 다른 정욕을 낳을 뿐입니다. 행위의 법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마음의 법이 있을 때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의의 근본은 긍휼과 자비입니다. 그것 위에 행동 지침인 계명과 율법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의 영역이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알리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우리가 보는 시각과 생각하는 사고의 방식도 바뀝니다.


    무기를 빼앗는다고 살인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나를 해하려는 상대를 불쌍한 내 형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 우리는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같은 형제입니다. 눈을 뺀다고 음욕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음욕, 탐욕, 탐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나 사물을 내 소유로 볼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피조물로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는 내가 소유한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학 2:8)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은 청지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곧 제자됨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이 맡기신 물질, 내 자녀, 내 배우자 심지어 교회마저도 사유화하게 됩니다. 결국 믿음 없는 종교 형식, 즉 예수님이 그토록 경고하신 율법주의, 형식주의 신앙만 남게 됩니다. 가짜를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죄야말로 무시무시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요일 2:4, 계 22:15)


    하나님 나라는 이런 우리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나오는 시각과 사고의 전환으로부터 임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은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은혜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만이 진정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천국의 삶은 은혜의 영역입니다. 은혜도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의도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의를 이루시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롬 10:4) 예수님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고전 1:30)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탐욕, 악의(롬 1:29)에서 나오는 반복되는 문제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마음의 변화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천국으로 들어가는 의의 문이 되시어,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살도록 이끄십니다. 이번 한 주도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주인 삼아 날마다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나타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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