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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3. 18. 23:00

     

    사순절 다섯째 주일[20130317]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히 10:19~25)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시던지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민족 이스라엘은 중보자를 통해서 이 두 가지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간 편으로 모셔오는 역할을 하는 중보자가 있었는데 이를 선지자라 부릅니다. 한편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를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을 크게 진노케 한 일이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이 날 백성 중 삼천 명을 죽이셨습니다.(출 32:28)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레위 자손을 제사장으로 삼게 됩니다. 성막이 완성되고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계시하시면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맙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진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이후 약 이백년이 흐른 때 말라기 선지자는 종교 생활의 부패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타락을 다시금 경고합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 1:6)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말 1:7-8)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 제사장 나라로 택해 주셨지만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배교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마음으로부터 드려지지 않는 그런 헛된 제사는 받지 않겠다고 하시며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깊은 탄식을 하십니다.(말 1:10)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오랜 시간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백년 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어 끊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의 속죄함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제사장이 사라진 이 시대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 중보자가 오셨음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19-20절)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결과로 모든 사람이 구원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예수님 의지하여 천국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죄 용서함을 받아야 들어가는 것이지 죄인인 채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나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그 희생 제물을 불태워 드림으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화제는 번제물을 먹기 좋을 만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고기가 끝까지 타버리면 너무나 역한 냄새가 납니다. 인간의 죄가 이렇게 고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이를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십니다.(레 1:9)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몸소 영원한 희생 제물이 되어 나무 위에서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추악한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사순절기에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가 그만큼 비참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인류가 속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씀에서 ‘담력’으로 번역된 단어 ‘파레시아’는 ‘자격’이란 뜻이 있습니다.

     

    죄인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도 속죄를 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살 길이 열렸으니 이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감사함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21-22절)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깨끗한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하였습니다.(렘 17:9) 진실한 마음을 회복하지 못하면 결코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찾지도 못합니다.

     

    본문 22절에서 ‘양심’으로 쓰인 ‘수나이데시스’는 원래 ‘보조를 맞추다, 같이 본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같이 보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사탄에게 예속된 양심을 가지면 악한 일만 도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죄 용서함 받아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속죄함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를 알고도 하나님께 나가지 않으면 죄악된 세상에 시선이 머물고 죄 짓는 곳에 발걸음이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시 1:1)

     

    우리가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함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요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됩니다.(고후 6:1)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고 있는 휘장은 네 종류의 실로 짜서 만드는데(출 26:31) 그 두께가 무려 15센티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에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로 갈라졌습니다.(막 15:38)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막이 제거됨은 구원의 은혜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가복음 10장에는 부자 청년과 거지 바디매오 이야기가 대조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막 10:17) 이 청년의 물음 속에는 구원을 얻는 일이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는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반면 앞을 못 보는 거지 바디매오의 외침은 어떠합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자비를 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응답하는 길은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롬 12:1)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 뒤에는 독생자를 죽이셔야만 했던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이 사순절 말씀 묵상의 주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그것은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으니 온전한 믿음과 영생의 소망 그리고 서로를 돌아보는 영적 책임 의식을 갖고 오늘도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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