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6. 2. 19:40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20130602]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약 1:1~4)

     

     

    맥시 더남(Maxie D. Dunnam)은 “각자가 처한 인생의 환경이 어떠한가 보다 그런 환경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모양이 어떠한가 보다 고난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올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피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믿지 않는 자들과 달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행함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일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 바르게 대처하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고난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성숙해져 갈 수 있는지 이 시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는 흩어져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이라는 말로 권면의 편지를 시작합니다. 야고보는 성도의 삶에도 언제든지 고난은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일깨워줍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이라고 했는데, ‘시험’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라는 ‘포이킬로스’라는 말은 ‘다양한 색깔, 변화가 많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매사에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13절).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도 자라납니다.

     

    보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한 것으로 읽기 쉬운 창세기 22장의 사건도 사실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이야기로 결론 맺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창 22:14).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거든’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당하다’라고 번역된 ‘페리핍토’는 ‘주위에 떨어지다’ 또는 ‘우연히 만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이 나를 겨냥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일로 예상치 않게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 자세는 원치 않는 고난이 오고,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3절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본문 2절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하였는데 3절에서는 ‘믿음의 시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야고보는 ‘시험’ 따로 있고 ‘시련’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2절에서는 ‘시험’이라고 표현했고, 3절에서는 ‘시련’이라고 했을까요? 여기에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2절에서 ‘시험’으로 쓰인 ‘페이라스모스’라는 말은 ‘유혹’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험에 지면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3절의 ‘시련’으로 쓰인 ‘도키미온’은 ‘진짜’ 또는 ‘순수’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시련을 이기면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성도는 고난을 당할 때 이 어려움을 시험이 아닌 시련의 과정으로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시험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시련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시련을 보게 되면 고난 뒤에 정금 같은 믿음을 예비하시고, 인내의 열매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고난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고난을 시험으로 생각하여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원망하게 되면 그 고난은 유혹이 되어 실족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시험이 되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세상의 술수와 육신의 정욕을 부추기는 꾐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시련으로 받아들이면 불순물이 제거되는 내면의 정화를 거쳐 더욱 순수해지고 강해지게 됩니다. 성도는 고난을 당할 때 이것을 믿음의 시련으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이여 오라’라는 강한 마음의 자세로 고난을 견뎌내면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행함 있는 믿음은 어떤 문제든지 그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스스로 연단해 나갈 때 생기는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고난을 시련으로 받아들이는 성도에게는 인내의 열매가 영글어진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3절)

     

    야고보가 '인내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내가 특별히 우리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약 5:7).

     

    곡식이 무르익는 데에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듯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도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눅 8:15). ‘인내’라는 단어 ‘휘포모네’는 ‘견고히 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의 과정 속에서 인내는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바울은 인내를 성령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갈 5:22). 특별히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라고 권면하였습니다(살후 3:5). 사도 요한 역시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자를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라고 설명하였습니다(계 1:9).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간 자는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기 때문입니다.’(롬 5:3-4) 이처럼 성도는 인내로써 시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연단이 되어 견고한 믿음 위에 서도록 만듭니다.

     

    시련의 때를 참고 기도하면서 인내로써 이겨나가면 결국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4절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이 와도 인내하면서 연단의 과정을 잘 감당하면 성숙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을 통해 연단의 모든 과정을 잘 참고 견뎌내어 완전한 성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는 믿음이 성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내적 기질입니다. 이러한 인내를 이루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영혼을 의와 거룩함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엡 4:24).

     

    우리는 세상의 많은 위인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며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시련을 인내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유익을 얻게 되고(시 119:71) 상처는 값진 진주로 변화되는 경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의 성도라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올지라도 ‘고난이여 오라’라는 적극적인 자세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기도로 시련을 극복해 나가면 주님의 날, 영광의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들어오도록 확실히 환영하실 것입니다(벧후 1:1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