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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를 본받아 약한 자를 섬기라.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3. 6. 18. 14:43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20130616]

     

    그리스도를 본받아 약한 자를 섬기라(롬 15:1~6)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의 구조를 전반부는 교리를 설명하고 후반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권면하는 편지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 신학을 깊이 이해하면 바울은 결코 교리와 삶을 분리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구원얻는 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속한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을 믿음이라고만 말한다면 바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 같은 표현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회개한 상태에서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회개하지 않은 상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롬 2:5). 그래서 바울은 진정 회개하고 거듭난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라고 표현합니다(롬 6:8).

     

    그리스도와 합한 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니다(롬 8:28).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모든 지체가 각각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며 동시에 다른 지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교회론을 설명하였습니다(고전 12장).

     

    본문에서도 바울의 교회론이 담겨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서로가 돕고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에 바울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하나 더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바울의 중요한 가르침이 요약된 로마서의 결론입니다. 바울의 성숙한 교회론과 구원론이 함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바울의 권면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합니다.

     

    1절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원문을 보면 ‘믿음’이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14장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라는 권면이 있기 때문에 후에 같은 의미로 의역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 공동체 안에도 연약한 자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1절).

     

    신앙 공동체 안에 믿음의 차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차이, 지식의 차이, 신체적인 차이 등 여러 면에서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그리스도를 본받는 공동체라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담당하다’라고 쓰인 ‘바스타조’는 ‘손을 붙잡아주다, 상대의 짐을 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손을 붙잡아 주고, 강한 자라면 약한 자의 짐을 함께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채워주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우둔한 사람을 보살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공동체를 주신 가장 큰 이유는 서로를 돕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우라고 하는 지 4절을 살펴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신앙 공동체는 연약한 자를 인내와 성경의 위로로 돌보며 소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2, 4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우리로 구원 얻는 지혜를 얻게 하시고자 함입니다(딤후 3:15-16).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 방법은 성경으로 교훈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성경적인 방법이 구원의 길입니다. 성경으로 교훈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선을 이루며 덕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되 하나님의 방식인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반면 세상의 방식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하고, 상대의 연약함을 들추어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약한 자를 일으키고 온전하게 세워 공동체를 섬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엡 4:12).

     

    그렇다고 약한 자를 돕는 것이 무조건 잘해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교훈으로 필요에 따라 격려하고, 권면하고, 훈계하며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그리스도 공동체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할 뿐만 나아가 여러 형편의 성도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화평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벧전 3:11). 그럴 때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5절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비결은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인내와 위로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신 최고의 모범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이시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빌 2:6-8).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몸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유익을 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모든 사람을 위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자 한 일이었습니다(히 5:8-9).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온전한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를 돌보고 온전한 구원을 위해 기도해 줄 때 그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약 5:16).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붙여주셨다고 했습니다(창 2:20). 이는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면에서 완전해 질 수 없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가 약한 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받음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론과 구원론의 핵심을 통해 성도의 이 땅에서의 존재 이유를 선포합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6절)

     

    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결론내립니다(5-6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명목으로 불의의 방법과 수단을 쓰면서 이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강한 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큰 자가 강한 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섬김의 본을 보이신 분이십니다(요 13:15). 하나님은 강한 자들 끼리 모였다고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혀주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납니다. 세상의 권력과 돈의 힘 같은 논리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십자가 같이 약함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는 말씀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모든 일에서 나의 유익을 먼저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하고 약한 자를 생각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이 세상엔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 보다 약한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나누고 섬길 때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를 오늘의 한국교회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로만 걱정하고 위로하고 돕는 것은 참 믿음에서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성경이 말하는 고아와 과부는 오늘의 의미로 이 땅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 없는 약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딤전 2:4).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섬김의 행위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마 6:10).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공동체 속에서 약한 자를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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