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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 우선이다.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5. 2. 1. 06:00

    주현절 후 넷째 주일(2015년 2월 1일)

    고린도전서 7장 29-35절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 우선이다.

     

     

    가. 오늘을 마지막 날로 살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29절).

     

    본문에서 바울은 “그 때가 단축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며 주님 오시길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림은 계속 지연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모든 교회는 주님 오시길 기다렸지만 수 세기가 지나도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천년이 지난 지금은 재림에 대해 거의 무관심해졌습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 재림사상이 약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현세지향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강조한 ‘재림’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때’는 ‘카이로스’로 쓰였습니다. 헬라어에 시간을 뜻하는 말에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으로, 제한되지 않은 시간을 말합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정해진 때고, 제한된 시간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인생이 크로노스라면 오늘은 카이로스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주님의 재림 때를 가리켜 카이로스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이를 오늘의 종말의식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임박한 재림이나 지연된 재림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있다고만 생각하고 종말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방탕하게 살기 쉽습니다. 이처럼 죽을 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면 크로노스적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알고 사는 것이 카이로스적인 삶입니다. 성도는 오늘을 마지막 날로 알고 믿음을 지키고 깨어서 살아야 합니다(눅21:36).

     

    나. 껍데기를 붙들고 살면 불행하게 끝납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31절).

     

    성도는 오늘 주님이 오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인자의 임함이 노아 시대의 그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사람들은 심판이 없을 것처럼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마24:37-39).

     

    본문에서 바울은 사람들의 일상을 언급하였습니다. 열심히 돈을 버는 일, 결혼하는 일, 살면서 생기는 기쁜 일, 슬픈 일. 요즘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몸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 땅에서 먹고사는 일,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체를 문제시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심판이 없을 것처럼 살고, 죽으면 사라지고 마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목숨 거는 일이 심각한 문제임을 일깨웁니다.

     

    바울은 이런 일들을 다 외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외형’(스케마)은 ‘형식, 껍데기’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일상과 몸, 재산 등은 다 이 세상에서의 껍데기입니다. 물론 이런 껍데기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껍데기 안에 알맹이가 담겨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알맹이의 의미를 모른 채 껍데기만 붙들고 살고 있다면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껍데기는 죽는 날 덧없이 다 날아가고 없어집니다(잠23:5). 인생의 본질인 알맹이가 무언지도 모르고 껍데기만 추구하는 인생은 죽음으로 끝날 뿐입니다.

     

    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 알맹이입니다.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29-31절).

     

    그러면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본문에서 바울은 이 질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바울은 다섯 가지 예를 들어 ‘~없는 것 같이’(호스 메) 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껍데기인 세상 일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로 ‘~없는 것 같이 살라’고 한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의 목적을 상실하고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까만 고민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찾다가 끝나는 껍데기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이 보통 자신은 껍데기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사람들도 눈에 보이는 명예와 탐심에 눈이 멀어 실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는 상관없이 종교 행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러한 껍데기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골3:6).

     

    바울은 세상일을 염려하여 마음이 ‘갈라지는’(수동태) 상태를 경계하였습니다(34절). 두 마음을 품고서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결혼도, 사업도, 공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만족, 내 명예, 내 유익을 위해서 하라고 주신 일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는 없는 자 같이 살아야 흐트러짐 없이 주를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라. 주님을 잘 섬기며 살면 내게도 유익이 돌아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35절).

     

    바울은 결혼하지 않으면서까지 주님의 일에 집중하고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는 일을 칭찬하였습니다(34절). 세상 일로 마음이 분산되는 일을 스스로 절제하는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유익’이란 ‘쉼포론’으로 ‘같이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것이 유익입니다.

     

    절제함으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면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살이의 이치에도 합당하게 처신하기 때문에 칭찬받습니다. 여기서 ‘이치에 합당하다’는 표현은 ‘유스케몬’으로 ‘좋은 모양’ 곧 ‘품위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31절에 ‘모양, 껍데기’라는 뜻의 ‘외형’(스케마)과 대조됩니다. 결혼생활도, 사업도,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하게 행하면 품위가 있고, 존경받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마6:24). 세상 일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기를 가르치셨습니다(눅10:40). 우리는 일상의 외형을 방편 삼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에 우선순위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유익이 되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는 기쁨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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