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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의 항해에서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교회력에 따른 본문 중심 설교 2010. 12. 14. 02:45

    대강절 제3주일[20101212]

     

    인생의 항해에서 어려움을 만날지라도(약 5:7-11)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참으라는 말인가요? 사실 언뜻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을 보면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고, 인내하라”고 했는데, 그 말씀과 같은 뜻인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앞의 5장 1절 이하와 연관해서 보면 좀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즉 본문의 뜻은 시험을 참으라는 의미보다는 신앙생활하며 당하는 억울함 또는 고난 등을 참으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야고보서는 당시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읽도록 보내는 회람편지였습니다. 특별히 야고보는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한국 교회사를 보면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그날로 자신의 소유 노비를 풀어주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행함이 없고, 복음을 안다하면서도 부를 나누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 것이며,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말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참으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감리교회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관심 없는 감독들로 인해 모든 감리교인들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싸우다 모두가 망한 꼴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해서 본문 7절 이하에서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농부처럼 “길이 참으라”는 말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금 당장 가난의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고, 지금 당장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오늘 하루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실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씨를 뿌리며 오늘 열매를 기대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이른 비는 봄비를 말하고, 씨를 뿌릴 때를 말합니다. 늦은 비는 가을비를 말하며, 추수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농부의 마음으로 인생의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가을비가 올 때까지 오늘 하루도 귀한 열매를 소망하며 밭에 나가 정성껏 일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억울함을 겪고,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서 참고 인내할 수 있을까요?

     

    먼저, 본문에서 야고보는 주님 오심의 소망을 품고 마음을 굳게 하고 길이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주님의 재림이 없고, 성도의 부활, 천국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소망이 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말하길 “네가 저녁에 수확한 것으로 하루를 판단하지 말라. 네가 뿌린 씨로 하루를 판단하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가 불안하다는 것은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삶을 시작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하루 신실하게 산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고, 오늘 하루 신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 속에 주님 오심의 소망을 품고 오늘의 힘든 상황을 참아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과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시편 말씀을 읊조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과 환경만을 보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리교의 전직 감독들과 감독이 되려는 사람들이 싸우다 결국 감리교가 망한 꼴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너무나 속상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내 탓이니 네 탓이니 하고 원망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계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욥이 모든 부와 자식을 잃고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입술로 죄를 짓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수기에 보면 원망하는 백성을 하나님이 벌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선악 간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말씀을 붙들며 힘을 얻어야 합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농부들과 어부들이 일터에서 어떻게 일합니까? 주로 노래 부르면서 일하지요. 풍년을 기약하며 노래 부르고, 만선을 기약하며 노래 부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까? 야고보는 “고난 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농부들이 농사하며 노래 부르듯이 우리도 순간 순간 말씀을 노래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슬플 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음미하고, 두렵고 떨릴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힘들고 지칠 때는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라는 말씀을 되뇌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마다 '나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항해에 없어서는 안 될 연료인 말씀을 노래하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윌리엄 쉐드가 말하길, “항구에 머무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생은 항해이고 모험입니다. 항해 중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고통 없는 인생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이 인생의 본질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날씨 탓만 하고 있는 농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난할지라도 웃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잠언에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기쁨 하나가 만 가지 근심을 몰아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항해에서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굳게 지키며 인내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주님 오시는 날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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